<신간>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신간>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8.06.2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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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신 지음/ 글항아리

진로소주, 아리랑담배, 삼양라면, 해태캬라멜, 쏘나타, 애니콜 등등. 만들어져 사랑받고, 혹은 인기를 잃어 사라진 사물들을 좇아가면 사람들의 삶도 드러난다. 진로소주의 두꺼비는 왜 달팽이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을까? 영이와 철수는 왜 교과서에서 퇴장했을까? 쏘나타의 눈은 왜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는 걸까? 왜 어떤 것은 머무르고 어떤 것은 사라질까? 

디자인된 사물들은 선택받기 위해 시대의 욕망을 다양한 모양과 색채를 통해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시대가 변하면 한때 사랑받았던 디자인이 찬밥 신세가 돼 물러나기도 하며, 못생겼다고 천대받던 디자인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디자인의 탄생과 변화, 죽음으로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한국인이 살아온 나날을 우리가 사물에 새겨온 무늬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 일상 사물들이 근대 개화기 이후 130년 동안 빚어낸 디자인의 연대기다. 디자인 중에서도 액자나 유리 케이스 안에 들어갈 법한 뛰어난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인지 논하기보다는, 투박하고 다소 촌스럽더라도 우리가 좋아했고 그래서 우리 곁에 오래 머물렀던 디자인들을 다룬다. 

그렇기에 우리가 타는 차, 우리가 먹는 라면의 포장지, 우리가 마시는 소주의 레이블, 우리가 읽는 책의 표지, 우리가 24시간 들고 다니는 핸드폰의 디자인이 그 대상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라면 포장지가 주황색이든, 소주 레이블이 두꺼비든 달팽이든 무슨 상관이야? 그런 건 그냥 가격 보고, 상표 보고 사는 거지.” 여기 등장하는 15개 사물 중에는 자동차나 핸드폰처럼 우리가 그 디자인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물건들도 있지만, 라면, 소주, 약처럼 디자인이라는 단어와 얼핏 어울리지 않고, 디자인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굳이 색채, 형태, 조형 원리 등을 운운하며 이런 것들의 디자인을 들여다보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 여기서 드러나는 한국인의 삶이다. 근대가 시작될 때의 어설픔, 경제 발전 시기의 자신감, IMF 이전 경제 활황 시기의 여유로움, 그리고 이후 현대로 오면서 강조되는 자유분방함,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 사물들에 그대로 무늬로 아로새겨져 있다. 두꺼비가 달팽이가 된 것은 환경문제를 중요시하는 녹색 시대가 한국에서도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라면 봉지에 빨강과 검정이 늘어나는 추세는 더 빠르고 각박해지는 시대를 표현한다. 

과거의 문학 작품을 통해 과거를 읽듯이, 디자인을 통해서 그 시대의 미감과 함께 성정도 읽어내는 것이다. 또한 둘째로 이렇게 주변의 디자인을 둘러보는 것은 일상의 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상품’이라는 이유로, 싸고 흔한 것이라는 이유로 이 일상 사물들의 ‘얼굴’은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온 이 물건들의 얼굴은 곧 우리 일상의 얼굴이 된다. 그리고 이 일상의 미감이 바로 우리가 살면서 느낄 미감의 대부분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을 강조하며 우리가 이 일상의 감각을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억눌러왔다고 비판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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