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청춘, 취업준비생을 만나다-간호사 지망생 정민이 3회

‘취준생’은 한 단어로 요약되는 사람이다. 사회문제나 특정 계층으로 치환되어 개개인의 존재는 지워지고 어떤 사람인지, 인생관이 무엇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일단 취업준비를 시작하면 주변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취준생A’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와 삶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없는 것이기에 직접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청춘의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다.

 

 

쉴 틈 없는 정민의 일상을 듣다가 차라리 빨리 취업에 성공해서 사회생활에 뛰어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해도 바쁜 인생이라면 그에 따른 보상이라도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정민은 취업을 빨리 해야 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간호사가 되면 더 바빠질 것이란다.

“간호사는 오버타임이 많고 근무 중에 휴식시간이 아예 없어.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는걸.”

“식사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은 거야?”

“응. 눈치껏 밥을 먹으러 갈 수 있기는 한데 바통터치 식으로 먼저 먹은 사람들이 빨리 돌아와야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정말 밥만 먹고 빠르게 복귀해야 하는 거지. 임산부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이야.”

임산부는 물론 신규간호사에게도 잔인한 근무 환경이다. 간호사에게는 각자 주어진 할당량의 업무가 있는데, 신규간호사는 이를 채우기 힘든데다가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빨리 하지도 못한다. 경력직이 퇴근을 못하면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어느 직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팀워크가 중요하고 근무 환경이 여유롭지 못한 직종일수록 규칙과 위계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도 경력직은 근무 중에 조금 쉴 수 있지 않아?”

“실습하면서 직접 본 것만으로 이야기하자면 휴식환경이 따로 없어. 간호사실이랑 수선생님(수간호사)의 방이 따로 있는데, 밥을 못 먹은 사람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테이블 정도만 있지.”

간호사실은 철저하게 일하는 곳이다. 좋은 병원은 수면실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민이 몇 번의 실습을 하는 동안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어떤 병원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일 뿐, 아마 소수의 병원에만 있을 것이다. 게다가 휴식 공간이 있어도 수간호사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끼리는 ‘태움’이라고 불러. 보통 경력직이 신규간호사를 괴롭히는 일인데 병원마다 다르지.”

소수의 사례이기를 기대했지만 괴롭힘 문화는 간호학과 학생들이 다 아는 명칭도 있을 정도로 공고하다. 직장 상사가 동료를 괴롭힐 때 ‘갈구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간호사들끼리는 ‘태우다’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두 언어 모두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행위로 쓰기에는 잔인한 뜻이다.

“실습 중에 목격한 적도 있어.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신입인데 학생들이 보고 있는데도 반말로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더라. 처음이면 못하는 것은 당연한데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혼내는 식이었어. 같이 실습했던 친구들도 그 선생님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했지.”

현장에 인력은 부족한데 일적인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은 직업이라 동료들끼리 여유가 없고 오히려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공분을 샀던 것은 임신순번제다. 병원에 인력이 부족해 간호사들끼리 임신할 순서를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임신과 출산을 행하는 것이다. 자신이 암컷 동물이나 출산용 기계처럼 느껴진다는 간호사들의 호소가 있었던 반인륜적인 규칙이었다.

“병원마다 다른데, 실습 나가서 임신순번제를 본 적은 없어. 문제가 없어서라기보다 애초에 임신을 꿈도 못 꾸는 환경이라서 그런 것 같아.”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간호사가 한 명당 환자를 맡는 수는 적정 수준보다 많다. 그런데 임신으로 인해 한 명이 빠지면 그 할당량을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한다. 이를 해결할 최적의 방안은 당연히 인력을 더 충당하는 것이다.

“간호사들 내에서도 ‘장롱 면허’가 있어. 간호 체제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간호사 면허증이 있어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

정민에 의하면 다른 국가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를 동등하게 보고 임금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이 다를 뿐 귀천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간호사를 하대하는 인식과 제도가 만연하다. 의사 혹은 환자에게 감정 노동을 포함한 필요 이상의 노동을 제공해주는 직업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들이 개선이 되어야 ‘장롱 면허’인 사람들이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고 병원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라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는 장기 입원 환자의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 간호사가 간병인의 역할까지 함께 하는 서비스다. 정민은 환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간호사의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은 간호사에게도, 인력난을 겪는 병원에게도, 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다. 더 많이 뽑고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생각했던 간호사라는 직업의 실상이 진짜일까 봐 걱정돼. 일이 정말 힘들다는 소문들도 그렇고 ‘태움’ 문화도 그렇고.”

정민은 간호사가 되고 싶은 것이 작은 꿈이라면 가장 큰 꿈은 간호협회에 들어가서 제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의료기술은 선진국을 따라가고 있는데 인식과 제도는 뒷받침되지 않아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란다.

마지막으로 정민이 하고 싶은 말을 실으며 간호사 지망생 정민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한다. 정민이와 같은 간호사 지망생, 그리고 취업준비생들이 아주 약간의 위로를 받기 바라며.

“나는 아직 어린 아이인데 취업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 계속 등을 떠밀고 있는 느낌이야. 취업준비생은 누구나 다 무섭고 힘들겠지. 다들 힘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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