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웨덴 사람들은 돈 개념이 철저하다. 적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작심하고 팁을 줄망정, 그렇지 않은데 자투리 거스름돈이라고 해서 그냥 대충 받는 법이 없다. 이런 철저한 돈 개념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스웨덴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부모에게도 공짜로 용돈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정해진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배를 타고 북동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박스홀름이라는 섬에 사는 11살 에바는 6월이 시작되면서부터 집 앞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 집 담장 바로 앞에 놓인 이 카페에서는 향긋한 커피와 맛좋은 차가 과자와 함께 놓여있다. 카페의 주인 에바는 직접 과자도 굽고, 커피와 차물도 끓인다. 커피와 차는 한 잔에 20크로나(우리 돈 약 2400원), 시나몬이 들어간 쿠키는 3개에 10크로나. 세트로 주문하면 25크로나를 받는다.

 

▲ 박스홀름의 집 앞에서 주말마다 카페를 여는 에바. 에바는 이 카페를 통해 조랑말을 살 계획이다.

 

에바가 이 카페를 연 이유는 말을 사기 위해서다. 에바는 지난해부터 아빠에게 조랑말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빠는 에바의 12살 생일에 조랑말을 사주기로 했는데 조건이 붙었다. 에바가 스스로 조랑말 살 돈을 벌고, 부족한 만큼을 아빠가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대신 말의 소유권은 온전히 에바에게 주기로 하고. 에바의 카페 앞에는 “이 커피와 차, 쿠키를 드시면 에바에게 작은 조랑말 포니가 생긴답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8살 토마스는 매일 아빠의 신발을 닦고 일주일에 50크로나를 받는다. 토마스의 아빠는 목수다. 그래서 매일 그의 작업화는 나무 톱밥으로 가득하다. 토마스는 아빠의 커다란 작업화를 청소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토마스는 불평 없이 매일 아빠의 작업화를 닦는다. 어쩌다가 아빠가 기분이 좋아서 5크로나를 더 주면 토마스도 서비스로 작업화가 아닌 아빠의 운동화도 털어준다.

7살 때부터 그 일을 한 토마스는 매주 받은 50크로나 중에서 30크로나를 자기 보물통 안에 모았다. 1년 조금 넘게 모은 돈이 무려 1700크로나 가까이 된다. 토마스는 자신의 9번째 생일에 그 돈으로 작은 자전거를 살 것이다. 혼자서 들기도 쉽지 않은 아빠의 작업화를 낑낑대며 닦는 토마스는 다른 때는 몰라도 그 일을 할 때는 늘 웃는 얼굴이다.

에바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4시간만 영업을 한다. 엄마와 아빠는 그 시간에 집 마당에서 딸의 장사를 지켜보기만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장사를 배우는 것이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에바의 엄마는 “그렇게 해서 산 말이라야 에바가 평생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에바는 돈 버는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말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고 대답했다.

토마스의 아빠는 토마스가 커서 능력 있는 사업가가 되기는 바란다. 물론 토마스가 더 커서도 아빠의 바람대로 자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돈의 가치와, 돈이 어떻게 자신의 소유가 되는 지를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토마스 아빠는 토마스가 18살이 될 때까지 결코 그냥 용돈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16살 소피아는 쿠바와 남미 여행을 위해 매주 토요일 동네 장터에서 장사를 한다. 지난 2년 간 거의 매주 토요일을 장사에 바친 소피아는 마침내 오는 11월 쿠바 여행을 떠나게 된다.

 

너무 어려서 돈의 의미를 아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다. 아이들의 순수성이 상업 행위에 침해될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 18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독립을 해야 하는 스웨덴 아이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돈을 버는 것과 마음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종종 스톡홀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감라스탄 골목에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합창 버스킹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십중팔구는 외국의 어떤 합창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불특정한 수많은 사람, 그것도 외국 관광객이 대부분인 그 사람들 앞에서 합창 연습을 겸해 돈을 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외국의 합창 경연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천주교 성당이나 루터교 교회의 카페에서 아이들이 빵과 케이크, 과자 등을 파는 일이 있다. 우리로 따지면 그 교회의 청소년부 학생들이 바티칸이나 외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를 가기 위해 비용을 만드는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위해 교회로부터 장소를 제공받고 스스로 경비 마련을 한다. 교회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가정에서 별도의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지 순례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스웨덴 사람들은 말한다.

불과 5살의 나이에 성냥을 구입해서 동네 어른들에게 판 소년이 있었다. 성냥 1개비에 1외레(100분의 1 크로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화폐 단위)가 안되는 돈으로 산 성냥이 몇 배로 불어서 그 소년의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 이케아 매장 -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이미 5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성냥 장사에 신이 난 소년은 크리스마스카드와 자그마한 벽장식, 예쁜 못을 팔기도 했고, 숲 속에서 딴 크렌 베리와 버섯을 팔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 성냥도 그랬지만, 이 소년이 상대한 첫 손님은 그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단 한 번도 그냥 용돈을 준 적은 없지만 소년이 무언가를 팔려고 가져오면 가장 먼저 그것을 사주었다. 평소 완고하고 다정하지도 않은 편인 할머니가 자신의 물건을 사는 것에 자신감을 얻은 소년은 점점 손이 큰 장사꾼이 됐다.

이 소년은 지난 1월 27일 세상을 떠난 세계 최대 가구회사 이케아의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다. 스웨덴 남부 아군나뤼드의 외딴 농장 엘름타뤼드에서 할머니 프란치스카와 어린 시절을 보낸 캄프라드는 이미 다섯 살 때부터 철저한 경제관념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장사꾼으로의 자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케아의 IKEA는 자신의 이름인 Ingvar Kamprad와 자신이 살았던 Elmtaryd, Agunnaryd의 앞 철자를 딴 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웨덴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이런 행동으로 셈만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성장해서 어른이 된 후 노동의 가치를 좀 더 치밀하게 아는 학습 효과도 있다.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그 노동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캄프라드처럼 기업을 경영하는 철학과 신념으로도 발전한다.

‘돈은 모으기는 어렵지만 쓰기는 쉽다’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모으기 어려운 돈은 쉽게 써서도 안된다’는 학습을 한다. 1인당 국민소득 5만 불이 넘는 스웨덴이 아직 채 3만 불에도 이르지 못한 우리보다 돈의 효용성을 더 따져가며 소비한다. 부모에게 받은 용돈으로 문구점 앞이 늘 성시를 이루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스웨덴 아이들의 보물통을 보여줬으면 하는 이유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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