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조그마한 소쿠리를 들고 이웃집 뜰이나 밭에 있는 감나무를 찾아다녔다. 감나무 아래엔 연시가 되어 떨어진 말랑말랑한 감을 소쿠리에 주워왔다.

그리고 낮에는 짙은 갈색으로 변한 밤나무들을 찾아 앞산으로, 뒷산으로 돌아다녔다. 커다란 밤나무엔 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난 감나무 위로 올라가 튼튼한 가지를 붙들고는 마구 흔들어댔다. 그러면 쫙 벌어진 밤송이들이 땅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무에 내려와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알밤들을 주워 소쿠리에 담았다. 아직 다 벌어지지 않은 밤송이들은 양발로 잡고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까면 됐다.

그렇게 밤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조그마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집 앞에 있는 산에 올라가면 땅 위로 튀어나온 돌뿌리들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밤나무는 바로 그 주변에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도 난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동네의 동생쯤 되는 아이와 밤을 주우러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밤을 줍던 그 동생이 그만 뱀에 물리고 만 것이었다. 밤알인줄 알고 줍는다는 것이 그만 독사 머리를 건드리고 만 것이었다. 돌멩이 사이사이에 떨어져 있는 알밤을 줍다가 그 사이로 뾰족이 나와 있는 독사머리가 밤알인줄 알고 건드렸던 것이다. 날이 어두워진 것도 원인이었다. 게다가 독사머리는 꼭 밤알과 색깔도 비슷했다. 손을 물론 동생은 무척 고통스러워하다가 나중엔 그만 기절을 해버리고 말았다. 난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잠깐 동안 고민을 하다가 동생을 들쳐 업고 무작정 마을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숨을 차올랐고 힘이 들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마을에 도착해 그 동생네 집에 들어가니 동생의 아버지가 깜짝 놀라 뛰어나오셨다. 그리고 뱀에 물린 부위에 입술을 대고 독을 빨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동생의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업더니 읍내 병원으로 뛰어가셨다. 나중엔 들은 얘기로 다행히 뱀에게 물린 직후 독을 빨아낸 덕에 동생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동생은 며칠 후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몹시 당황했었다. 사람이 기절한 것도 처음 보았을 뿐만 아니라 동생이 죽는 줄만 알고 겁이 나 벌벌 떨 정도였다. 그리고 동생의 아버지에게도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죄송스럽기만 했다. 그 사건 이후 며칠동안은 감이나 밤을 주우러 다니지도 않고 그저 집안에만 틀어 박혀 지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겨울은 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머슴살이 했던 집에서 받아온 쌀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 가마니 정도 되던 쌀이 집에 돌아온지 두 달도 안돼서 푹 줄어 있었다. 물론 밥을 해먹은 것도 있지만 그보단 아버지께서 장날만 되면 쌀을 퍼가지고 읍내에 나가 팔아 술을 사드신 이유가 컸다.

아버지께선 오랜 세월을 술과 함께 사시다보니 이미 술을 못드시면 살 수 없을 정도가 됐던 것이다. 추운 겨울 배고픔으로 떨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은 악몽이 계속됐다. 그나마 머슴살이 생활을 하면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지냈는데 또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난 다시 결심했다.

"그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이 추운 겨울 밥도 먹지 못하면서 지낼 수는 없는 거야."

다시 집을 나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전에 머슴살이 생활을 했던 곳으로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곳에선 나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도 느꼈던 터였다.

"그런 산골짜기 마을보다는 좀더 넓은 도시로 나가 기술을 배우는 거야. 그래서 돈을 벌어 아버지를 모시고 양식 걱정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거야."

머슴살이 생활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후 그런 생각들은 항상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다. 생각은 많았지만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도대체가 감이 잡히질 않는 것이었다. 그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졌을 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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