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매와 흰머리독수리
참매와 흰머리독수리
  • 이수호
  • 승인 2018.06.28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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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칼럼>

북한의 나라새는 참매, 미국의 나라새는 흰머리독수리입니다. 이번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과 미국은 나라새를 상징하는 국가원수 전용기를 띄웠습니다. 참매 1호와 에어포스 원이었습니다. 회담장을 향해 대륙을 건너 수천km를 날았습니다. 

문득 백기완 선생님이 어린 시절 할머니께 들었다는 ‘장산곶매’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옛날 황해도 구월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쭉 뻗다가 끊어진 곳에 장산곶이란 마을이 있었다. 산맥과 바다가 맞부딪치는 곳이라 물살이 드세고 땅의 기운도 센 곳이어서 약한 것들은 살아남질 못했다. 그 장산곶에 우거진 숲이 있었고 항상 정기가 서려 있었는데 그 숲에 장산곶매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산곶매는 이 숲 속 날짐승들 중 으뜸인 장수 매를 일컫는데 이놈은 주변의 약한 동물은 괴롭히지 않을 뿐 아니라 1년에 딱 두 번 먼 곳으로 사냥을 떠났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부리 질을 하며 자기 둥지를 부수었다. 장산곶매가 한 번 사냥을 나선다는 건 생명을 건 혼신의 싸움이었으므로 그 부리 질은 마지막 입질 연습이요, 또한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까지 부수는 정신적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장산곶매가 무사히 부리 질을 끝내고 사냥을 떠나면 이 마을에는 행운이 찾아들었다. 

그래서 장산곶 마을 사람들은 장산곶매가 부리 질을 “딱 - 딱 - ” 시작하면 마음을 조이다가 드디어 사냥을 떠나면 바로 그 순간 봉화를 올리고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런데 하루는 먼 대륙에서 큰 날개를 가진 독수리가 쳐들어와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송아지도 잡아가고 아기도 채가고 농사지은 것도 다 망가뜨려버리고 사람들이 많이 죽기도 했다. 

사람들이 슬퍼하고 기운이 빠져 있을 때 장산곶매가 날아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응원했다. 독수리는 그 큰 날개를 한 번 휘두르면 회오리가 일어날 지경이었고 장산곶매는 그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았다. 싸움은 밤새 계속되었고 흰옷 입은 사람들의 옷에 뚝뚝 붉은 피가 떨어졌다. 장산곶매와 물을 건너온 독수리는 밤새도록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장산곶매는 죽을힘을 다해 싸웠지만 원체 큰 독수리라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장산곶매는 독수리의 날개 죽지에 약점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그곳을 집중 공격하여 쪼아버리자 독수리는 맥을 못 쓰고 땅 위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져 버렸다. 

천신만고 끝에 싸움을 이긴 장산곶매는 벼랑 끝 소나무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바위틈에서 싸움 구경을 하고 있던 구렁이가 독이빨에 혀를 날름거리며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하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징을 치며 응원하자 힘을 얻은 장산곶매는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구렁이의 눈을 찌르며 움켜쥐고는 훨훨 힘든 날개 짓을 하며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데, 막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마을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제 백 선생님도 연로하시고 심장수술 후유증으로 힘들어하고 계신데 누가 이런 신나는 얘기라도 들려줄까요?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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