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동안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양과정 학부의 학생들에게 다산 강의를 할 때에 맨 먼저 다산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바로 다산은 세 가지를 좋아했던 사람으로 호고·호독·호아하던 분이라 했습니다. 50년 가까이 다산의 책을 계속해서 읽고, 다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지내면서 다산이 가장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니 떠오른 생각이 바로 세 가지로 압축되었습니다.

다산은 61세 회갑을 맞이하여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정리하여 기록해 놓았으니,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집중본(集中本)과 광중본(壙中本)이라는 두 종류의 글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간략한 일대기를 지어서 무덤 속에 넣는 글이 ‘묘지명(墓誌銘)’이라는 문체인데, 집중본은 묘안에 넣지 않고 뒷날 편집하여 간행할 문집(文集)에 기록으로 남길 묘지명이라는 글이고, 광중본이란 묘지명 뜻 그대로 무덤 안에 넣어서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려던 글입니다. 집중본은 다산의 일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태어나서 회갑 때까지 살아온 내력과 벼슬살이의 이력과 업적, 유배살이 기간의 온갖 저술과 그 책의 내용까지 자세히 설명한 수 천자의 장문이며, 광중본은 매우 간략하게 연대기와 같은 짧은 글입니다. 연대기야 두 글이 일치하지만, 업적에 대해서는 집중본에서 아주 자세하게 기술하여 다산 사상과 철학이나 삶의 업적까지를 자신의 기술을 통해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찬(自撰)’입니다.

광중본에서 다산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몇 글자로 설명합니다. “유이영오 장이호학(幼而穎悟 長而好學)”이라고 말해 어려서는 영특하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학문을 좋아했노라고 표현합니다. 그 글의 뒷부분에서는 “낙선호고(樂善好古)”라고 말하여 자신의 사람됨이 착함을 즐기고 옛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짤막한 표현에서 다산이 일생동안 무엇을 좋아하면서 살았던가를 알아내게 됩니다. ‘낙선호고’라는 네 글자에 ‘호고’가 있으니,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위해서, 옛것을 좋아했다는 뜻이니, ‘고(古)’라는 ‘고전(古典)’, 공자·맹자와 같은 ‘고인(古人)’을 좋아하는 일이며 경전의 주석에도 신주(新注) 보다는 고주(古注)를 더 좋아했던 것이 호고였으니 다산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단어입니다.

‘장이호학’에서 학문을 좋아한다 함은 바로 옛날의 책을 읽기 좋아함이니, 호학은 바로 ‘호독’과 차이가 없는 말입니다. 다산처럼 학문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했던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참으로 호독하던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편지마다 두 아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것만으로도 다산의 읽기 좋아함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호아’입니다. 내 것, 우리 것, 우리 학문, 우리 역사를 좋아하지 않고서 저작한 책을 책으로 인정하지 않던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시를 지어도 우리나라 고사(故事)를 인용해야지 중국 것만 인용해서는 좋은 시가 아니라 했고, 『삼국사기』·『고려사』등 우리의 역사자료, 우리의 민속과 풍속을 주제로 하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라고까지 극단적인 표현을 했던 점으로 보면, 다산은 분명히 내 것, 우리 것, 우리 역사, 우리 땅을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의 우리 국민들, 과연 다산처럼 세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위대한 학자 다산의 뜻을 존중한다는 뜻에서라도 우리는 다산의 ‘삼호(三好)’를 좋아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 국민의 병폐를 치유할 방책이 아닐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