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스웨덴은 흥분하지 않는다
16강? 스웨덴은 흥분하지 않는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7.0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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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웨덴 땅에서 월드컵의 함성이 들린 것은 12년 만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스웨덴은 불세출의 스타 즐라탄 이블라히모비치를 앞세워 월드컵의 열기를 뿜었다. 게다가 당시 스웨덴은 조별 예선에서 파라과이를 1대 0으로 물리치고, 강호 잉글랜드와 2대 2 무승부, 그리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0대 0 무승부를 기록해 1승 2무로 16강에 진출했다. 물론 16강에서 독일에게 0대 2로 패배. 함성은 16강에서 그쳤지만.

그렇게 12년의 세월이 지난 후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두 번째 조별 예선 경기인 대한민국과 스웨덴 전이 열리던 지난 6월 18일 오후 2시(이하 현지 시간). 스톡홀름 시민들이 함께 모여 단체 응원전을 펼치던 스톡홀름 최대 축구 경기장인 텔레2 아레나(Tele2 Arena). 경기장 안은 온톤 노란색의 물결이었다. 12년 만의 흥분이 느껴지는 듯했다.

 

▲ 지난 18일 한국과 스웨덴의 조별 예선 첫 경기 때 축구 경기장인 텔레2 아레나에서 열린 단체 응원 모습이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가슴에 스웨덴 국기가 새겨진 노란색 응원 티셔츠를 입은 스웨덴 시민들에게는 축구 응원을 하러온 사람의 들뜸이 없었다. 운동장의 대형 TV 모니터에 스웨덴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이 비쳐질 때마다 환호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경기 중 열심히 “스베리예(Sverige. ‘스웨덴’이라는 뜻의 스웨덴어)”를 외쳤지만, 비교적 앉은 자리에서 차분하게 경기를 관람했다.

스톡홀름 북쪽 태비 센트룸(Täby centrum) 앞 광장의 거리 응원전에도 1000여 명의 스웨덴 축구팬들이 모였다. 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센트룸 측이 제공하는 공짜 음료수며 팝콘, 초콜릿과 사탕을 먹으면서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한껏 넘쳐 보였지만, 그렇다고 흥분한 표정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거기까지다. 한국과의 1차전에서 1대 0 승리를 거둔 후 23일 오후 8시 열린 독일과의 1차전에서 1대 2로 덜미를 잡히기는 했지만, 27일 오후 4시 멕시코를 3대 0으로 잡고 한국의 16강행을 수포로 돌려놓으면서까지 16강에 올랐지만, 23일과 27일 경기는 18일 경기만큼의 열기도 없었다.

텔레2 아레나 같은 대형 운동장의 단체 응원은 고사하고, 크고 작은 동네 광장의 단체 응원전도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물론 스포츠 바 등에서 소소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응원 열기를 지펴보기도 했지만 뜨거운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심지어 조별예선 3경기를 모두 공중파 3개 방송에서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등을 내세워 경쟁적으로 중계하던 우리와는 달리 스웨덴은 조별 예선 세 경기 모두 SVT나 TV4 중 한 개 방송국이 번갈아가면서 중계 방송했을 뿐이다.

 

▲ 운동장을 가득 메운 열성적인 응원전은 볼 수 없었다. 관객석이 텅 비었고, 운동장에만 관객들이 있는 정도였다.

 

스웨덴이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라여서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스웨덴은 축구 강국이라고까지 얘기할 수는 없지만, 세계 축구계에서의 위상이나, 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은 특별하다.

스웨덴은 1904년 국제축구연맹(FIFA) 설립 멤버이고, 1924년부터 시작한 국내 리그 알스벤스칸(Allsvenskan)은 9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은 국제 축구 무대에서 올림픽과 월드컵 모두 상위의 성적을 거두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비롯해, 1950년 브라질 월드컵 3위,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축구 동메달, 그리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까지.

특히 스웨덴이 금메달을 땄던 1948년 런던 올림픽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당시 사상 첫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축구는 1차전에서 세계적인 강호 멕시코를 3대 2로 이기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기적도 잠시, 2차전에서 한국은 0대 12라는 굴욕을 겪었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점수 차 패배였고, 한국에게 그 치욕을 안겨준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그것을 발판으로 10년 간 스웨덴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독일(당시 서독)이나 프랑스를 능가하는 세계 축구 강국이었다. 그리고 그 성적 덕에 스웨덴은 아직도 FIFA 월드컵 랭킹에서 상위 그룹에 속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후 스웨덴은 유럽의 축구 강호 자리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두 12회에 걸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저력이 있다. 그 중 8번은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8강에 2번, 4강에 3번, 그리고 자국에서 치른 1958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까지 했다. 그래서 현재 FIFA 월드컵 역대 전적 서열 10위에 랭크돼 있기도 하다.

 

▲ 그나마 한국과의 경기에 거리 응원전이 열린 것은 12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랄까? 23일 독일, 27일 멕시코와의 경기 때는 그런 거리 응원전은 거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스웨덴의 이번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은 축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과시하는 스웨덴 시민들에게는 큰 기쁨이면서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스웨덴 내에서는 어지간히 월드컵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

그나마 12년만의 본선 첫 경기인 한국과의 경기 때는 여러 이벤트를 벌였다. 하지만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인 텔레2 아레나에서 열린 단체 관람은 190 크로나(한국 돈 약 2만 4000원)의 입장료를 받아서인지 관중석 곳곳은 빈자리가 많았고, 오히려 스웨덴 사람들보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입장이 많았다고 한다.

23일 독일과의 경기는 12년 전 독일 월드컵 16강전 패배의 복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대규모 거리 응원전은 없었다. 마침 그날이 토요일이라 대부분 각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정도다.

16강 진출 여부가 가려지는 27일 멕시코와의 경기도 별 차이가 없었다. 대규모 거리 응원전은 거의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그 규모는 한국의 거리 응원전과 비교해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를 두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어지간한 자극에 둔감하며, 집단의 맹목적인 이해관계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품성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냉소적으로 상황을 보는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이 이번 월드컵 4강에 진출한다고 해도, 스웨덴 사람들에게 월드컵은 그저 월드컵일 뿐, 어떤 광란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정도라면 이것도 스웨덴 고유의 ’라곰(Lagom)‘이 아닐까? 

<PS. 이 글은 스웨덴과 스위스의 16강 토너먼트가 열리기 전에 작성된 글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이석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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