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꿈 펼치기 위해 당직골을 떠나다
새 꿈 펼치기 위해 당직골을 떠나다
  • 김덕희
  • 승인 2018.07.03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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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비록 11살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이미 머슴살이를 하며 세상살이를 경험해 본 터라 고민은 쌓여만 갔다. 집을 나가야 겠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산골 촌구석에 처박혀 이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슴살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받아온 쌀도 이미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그렇다고 머슴살이 생활을 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곳에는 내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절감한 상태였다. 물론 밥을 먹고, 끼니를 때우는 덴 문제가 없었지만 그곳에 갇혀 지낸다는 건 죽기 보다 더 싫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 넓은 세상에서 돈을 벌어 아버지와 양식 걱정 하지 않으며 살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생각들은 더 절실해졌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곳이 바로 죽산읍내. 아버지를 따라 장터에 다니면서 알게 된 그곳은 내가 살던 산골마을 당직골과는 차이가 너무나 큰 곳이었다. 사람도 많았고, 일 할 곳도 많은 것처럼 보였다.

"죽산읍내에 나가서 무슨 기술이든 배우는 것이야. 그래서 돈을 벌어 아버지를 그곳으로 모셔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그곳엔 내가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이 어린 내가 무턱대고 찾아간다고 해서 반갑게 맞아줄 곳이 있을리 만무했다.

어느날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서 난 아버지에게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고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셨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셨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아버지께서 외출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리곤 나에게도 빨리 준비를 하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난 영문도 모르고 세수를 하고 옷을 걸쳐 입은 채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의 발길은 지난 밤 내가 얘기한 죽산읍내 쪽으로 향했다. 난 생각했다.

"아버지가 내가 기술을 배울만한 곳을 가시나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묻지는 않았다. 당직골에서 죽산읍내까지는 20리 길 정도 되었는데 아버지와 한나절 정도는 걸어야 읍내에 당도하곤 했다. 버스가 다니는 차도로 가면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아버지께서는 걸어갈 때는 항상 산길을 이용하셨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비포장이다보니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뿌연 먼지가 날리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다니는 것이었다.

 

 

그날도 아버지와 나는 첩첩산중의 깊은 산고개를 넘고 또 넘었다. 한참을 걷던 아버지가 힘이 드셨는지 양손으로 입고 계신 흰두루마기를 뒤로 제치시더니 큰바위에 걸터 앉으셨다. 나도 아버지 곁에 다가가 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버지가 앉아 계신 큰바위 밑 풀숲에서 매섭게 생긴 독수리 한 마리가 푸드득하고 날아가는 게 아닌가. 난 깜짝 놀라서 하늘로 날아간 독수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독수리가 있었던 큰바위 밑 풀숲에서 부시럭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조심조심 바위 아래로 내려가보니 꿩 한 마리가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꿩은 한쪽 눈이 없는 상태였다. 아마도 독수리에게 쪼혀 먹힌 것이리라. 그리고 몸 이곳저곳에서도 피가 나고 있었다. 계속 날아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한쪽 눈을 잃은 상태여서 균형을 못잡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을 뿐….

난 이게 웬 횡재냐, 며 그놈을 두 손으로 얼른 잡았다. 그리고 그 꿩을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다. 꿩은 그 순간에도 계속 몸부림을 쳐댔다. 아버지는 근처에 있는 지푸라기를 주워 꿩의 두 다리와 날개를 꽁꽁 묶었다. 그리고선 흡족한 얼굴로 담배 한 대를 태우시곤 꿩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난 아버지 뒤를 따르며 아버지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고 있는 꿩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늦가을이었지만 햇볕이 따가웠다.

그리고 해가 하늘 가운데쯤 와 있을 때 우린 죽산읍내에 도착했다. 당직골에서 죽산읍내를 가다가 마지막 고개를 넘어 비탈길을 내려와 작은 길모퉁이를 돌면 커다란 성황당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 나무 아래엔 자잘한 돌들이 수북시 쌓여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뭔가를 기원하며 던져놓은 것들이었다.

아버지께선 그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언제 주웠는지 작은 돌 몇 개를 성황당 나무 아래를 향해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리시며 던지셨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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