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정권 때 극심한 탄압, 밥줄까지 끊겨”
“이명박근혜 정권 때 극심한 탄압, 밥줄까지 끊겨”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07.0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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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이외수 작가-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이외수 작가

 

- 한국의 문화예술정책,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정치인과 교육계의 무지(無知)가 문화예술 발전에 있어서 최대 걸림돌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70년 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온 수구세력들, 세월호 사태에서 보았듯이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을 보지 못했다. 막말로 탐관오리였거나 권모술수에 능한 간신모리배들이 세력을 잡았던 시대가 있었다. 사이비 정치집단에 불과했다. 그런 사람들이 진짜 정치인 행세를 해왔다. 그런 정권에 기생해 살던 가짜 문화인들이 진짜 대우를 받았고, 진짜가 가짜 대우를 받았다. 패악한 정권은 진짜를 가짜 취급했고 세상은 거꾸로 돌아갔다. 그런 세상을 올바로 잡아보려고 했지만, 세상은 나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런 시기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박해는 도를 더해만 갔다.

 

- 이명박-박근혜 정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랙리스트’도 그렇고.

▲ 그런 짓은 북한도 하지 않는다. 정권차원에서 추한 작태들을 문화예술인들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당시에 나는 방송과 강연 등 모든 문화예술 활동을 철저히 차단당하고 압박당했다. 손과 발이 꽁꽁 묶였고,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 천안함 사건 때도 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아는데.

▲ 당시 언론을 보면, 북한군이 반잠수정을 타고 서해안으로 침투해서 일본군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천안함을 격침시켰다고 세세하게 삽화까지 넣어 국민들을 호도했다. 나는 북한이 그럴 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수긍하거나 믿지도 않았다. 그것도 한·미 연합군이 시퍼렇게 훈련 중인 상황에서 경계망을 뚫고 격침시켰다면 지휘관의 경계실패다. 진정한 군인이라면 전부 처형당했거나 문책을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오히려 관련 지휘관들에게 표창을 주었고 진급까지 시켰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잘못된 사건이다. 나는 40년 간 소설을 써서 밥 먹고 살아온 사람이다. 정부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조롱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부와 언론이 합작해서 나를 모함하는 기막힌 소설을 써댔다.

 

- 언론도 이 작가를 ‘종북좌빨’로 몰아갔다는데.

▲ 수구언론은 나를 ‘종북좌빨’로 몰아갔다. 한 달에 무려 34번이나 나를 모함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믿는다’는 말처럼 한 달에 걸친 악의적 보도로 인해 내 독자들도 엄청나게 떨어져 나갔다. 결국 밥줄까지 끊겼다. 생계수단인 소설도 쓰지 못했다. 모든 방송활동과 강연도 차단당했다. 어마어마한 시달림이었다. 이명박 정권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은 오히려 나를 더 극심하게 탄압했고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생활은 궁핍 그 자체였고, 끼니거리도 수시로 떨어졌다.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악몽의 9년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극심한 암흑기였다.

 

- 권력과 예술은 가깝고도 멀다.

▲ 중세기 당시 탐욕스런 권력이 예술을 이용했지만, 예술도 권력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중세 로마교황청은 유럽 모든 국가의 왕권보다 높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교황은 27개의 성(城)을 가지고 있을 만큼 영화를 누렸다. 부인도 수십 명씩 거느릴 정도로 부패한 생활을 했다. 당시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들은 교황청 천정화 등 수많은 성화를 그렸고 그림 값도 엄청 비쌌다. 그런데 부유한 교황청은 그에게 그림 값을 지불하지 않았다. 교황은 미켈란젤로가 찾아오면 숨어 다녔다. 1000년간 유럽을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암흑기로 몰고 간 게 당시 교황청이었고, 지금 우리의 정치적 상황도 비슷하다.

 

- 화천군 감성마을 이야기를 해보자. 조례취소 소송을 제기한 걸로 아는데.

▲ 화천군이 법령에 따라 2006년부터 최근까지 집필실 사용료 1877만원을 내라는 거다. 일단 법원에 조례취소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화천군 의회가 주장하는 불법점유 문제와 사용료 변제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처음부터 화천군은 내 작품들을 전시하고 관람료를 받아왔다. 이제는 사용료를 나에게 달라는 취지다. 무효소송 판결이 정당하게 나오면, 화천군으로부터 오히려 돈을 받아낼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 최전방에 있는 군사도시로 각인된 화천군을 위해 13년 동안 무보수로 고군분투 자원봉사 해오면서 감성마을로 전 국민에게 도시의 이미지를 탈바꿈 시켰다. 이에 대한 도메인과 특허까지 냈을 정도로 국민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 그로인한 경제적 효과는.

▲ 화천군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군사도시다. 딱딱하고 위압적인 군사도시 이미지를 따뜻한 감성마을로 바꾸는데 13년이 걸렸다. 자연생태마을로 조성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화천을 생태마을로 바꾸었을 때 경제적 이득을 돈으로 환산해보려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약 100억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것만 해도 화천군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나 군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문화보다 표가 중요하고 당선만이 목적인 사람들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신들의 지명도를 높이려는 수단으로 나를 건드려 왔다. 더욱이 의회가 제일 먼저 나서서 나를 쫓아내려 추방운동을 벌이기까지 했었다. 거리곳곳에 80개에 달하는 플래카드를 불법으로 내걸었다. 나는 화천군 발전을 위해 트위터에 농산물판매 돕기 등 관광활성화에 기여한 부분이 많은데 쫓아내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지난 6.13 선거 후에도 변화가 보이지 않나.

▲ 6.13 선거에서 대구-경북 지역만 빼고 여당이 거의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13년 살아 온 화천군은 여전하다. 이 지역은 북한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군사도시다. 여기서 군 생활을 마친 퇴역군인 거주자들이 많은 곳이다. 정치적으로나 안보적으로나 아직도 수구마인드가 깊다. 선거가 끝났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지금 대한민국이 거대한 흐름으로 바뀌고 있지만, 이곳은 안 바뀌고 있다. 참 답답하다.

 

- 대구-경북 민심도 바뀌어가고 있다는데.

▲ 일반적으로 대구-경북은 전혀 안 바뀔 것 같이 보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대구-경북 지역만 그대로 남았다. ‘북한도 바뀌는데 대구는 왜 안 바뀌나’는 논조로 은근히 헐뜯었더니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멀쩡한 사람을 ‘종북좌빨’로 덮어 씌워 놓는 것은 반성하지 않고 내가 지적한 것에만 발끈하는 지역이다. 어쨌든 잘못한 것은 반성을 해야 개선이 가능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인 구미시마저도 시장이 바뀌었다. 그동안엔 지역적인 우월감이라든가 대통령을 4명씩 배출했다는 자만과 오만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 남북 얘기다. 남북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안보지형이 변했다. 남북 간 철도 현대화와 민간교류 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 개인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옹졸하고 답답한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 살면서 보아온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통치스타일은 집권 유지만이 절대적 과제였다. 그의 선대들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외부세계 눈치도 전혀 보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스타일은 다르다. 늘 외부와 조율하고 측근과 소통을 시도해왔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미사일 개발도 그런 방편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 삼지연관현악단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북한을 가장 싫어했던 이유가 있는데, 예술마저 집권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킨 것 때문이다. 예술지상주의자로서 그런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천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유치원생이든 대학생이든 기계적 인간으로 만들었고 강압적인 방식을 통해 정치적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것마저 허물어버렸고 외부세계와 타협과 소통의 길로 가고 있다.

 

- 북한의 예술이 변했다는 말인가.

▲ 중세기 때부터 예술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부유층 가문 조상의 초상화를 어느 화가가 그렸고, 자신의 집에 어떤 음악가가 초빙돼 연주했다든지 등 예술은 정치적 도구로서의 권위와 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북한도 그런 방식을 유지해오다가 그것조차 해체시키기 시작했다. 북한은 예술의 절대적 가치를 바꾸고 있고 의식 또한 매우 달라졌다. 그동안 북한에서 예술은 집권 목적 이외의 기능이라곤 없었다. 그런데 삼지연악단의 연주를 보고나서 깜짝 놀랐다. 일단 지휘하는 스타일 자체부터 모두 남한 정서에 맞췄다. 선정된 노래 20곡 중에서 단 2곡만 북한체제와 관련된 곡이었다. 나머지 18곡은 전부 남한의 노래였다. 흐름에 맞게 곡을 선곡했다. 예를 들면, ‘금강산 맑은 물도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로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나~’에 이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같은 가사들이 절묘하게 이어지도록 전략적으로 연주를 했다. 이것을 보고 ‘아, 북한이 정치적 도구로 쓰던 예술을 드디어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구나’ 느꼈다. ‘남북한 관계가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김 위원장이 그런 의식을 가지고 예술을 사용할 줄 안다면, 이제부터 다른 분야도 훨씬 좋은 쪽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한의 미래를 상당히 밝게 보고 있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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