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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베란다에도 화분이 있습니다

<가톨릭일꾼> 김유철 칼럼 김유철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7.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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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 사진=김유철

강남과 강북, 동평양과 서평양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LEON. 1994년)을 보셨는지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늘 가지고 다녔던 화분이 무슨 의미였는지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이름난 야생화 전문가가 재배하는 다양한 꽃들보다 영화 속 그가 삶의 팍팍함에도 불구하고 늘 가지고 다녔던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는 어떤 웅얼거림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희망을 현실로 바꾸려하지만 아직도 ‘평양’은 낯선 단어입니다. 평양은 특별시가 아니라 직할시이고, 남포와 나선이 특별시입니다. 남쪽과는 시를 구분하는 기준이 다른 모양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 잘 아는 듯해도 여전히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멀쩡한 지름길을 놔두고 남의 나라로 돌아가는 모습은 남북 모두가 처해있는 어정쩡한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평양을 들어갔을 때 대동강에 있는 양각도 류경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나서야 북녘 땅에 온 것을 실감할 정도로 남쪽과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낯선 곳이 그곳입니다.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이 나뉘지만 평양은 대동강을 중심으로 동평양, 서평양이 나뉩니다. 한강과 대동강이 한 눈에 비슷한 것은 강변의 많은 아파트들 때문이었습니다.

 

“화분을 왜 가꾸세요?”

평양의 오래된 이름이 류경(柳京)이라고 책에서 본 것처럼 대동강변에는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강변에서 우연히 바라본 아파트 베란다의 수더분한 화분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네 왔습니다. 새로울 것 하나도 없는 일이지만 그곳에서 화분을 발견한 것은 나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 놀란 가슴은 이내 한없는 침묵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평양시 선교구역의 장충성당과 이웃한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화분과 동․서평양을 양각도와 이어주는 대동강 다리 옆 빛바랜 아파트의 화분이 북녘땅, 하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지난 4월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역사의 두물머리로 삼아 남북은 화해와 일치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 그곳을 다녀온 느낌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금강산을 가니 겨레로서의 ‘북(北)’이 보였고, 개성을 가니 협력 사업을 하는 ‘남(南)’이 보였고 평양을 가니 ‘화분’이 있다”고 말입니다.

평양 순안공항이나 류경호텔, 민족식당에서 일행을 맞은 화려한 꽃이 피어있는 화분은 어떤 감정도 전달해 주지 못하는 이른바 공화국 화분이었지만 북녘의 인민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아파트 가정집의 창문 베란다에서 애써 움을 튼 화분은 못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질문을 마음속에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화분을 왜 가꾸세요?”

 

▲ 대동강변 버드나무. 사진=김유철

이제는 평양에도 아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평양에 앞서서 2006년 금강산 장전항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젊은 접대원 동무와 일행은 짧은 시간동안 오해에서 출발하여 이해로 가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는 이해로 가는 가장 편한 길이더군요. 눈이 하염없이 쌓여있는 만물상을 오르는 길에 만났던 변소-물이 있는 곳은 위생실이지만 물이 없는 곳은 그냥 변소라고 부른다-의 관리인 아바이와는 말로 시작해서 침묵으로 가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역시 젊은 접대원보다 늙은 아바이가 가슴으로 하는 대화에 익숙하기는 민족의 특성인 모양입니다.

개성에서 나무보내기와 관계된 일로 만난 북측 일꾼은 쓰임새가 있을 재목이었습니다. 김일성대학을 나왔다는 그에게 “나의 딸이 당신처럼 일류대학 나오고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을 보면 재수없다고 한다”고 웃으며 말했더니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북에서도 매일 듣는 말이라 일 없습네다”라고 응수한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는 그를 평양 방문 마지막 날 순안공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각기 다른 일행과 섞여 있다가 멀리서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 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집에도 화분이 있나요? 꽃도 피나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가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제는 평양에도 아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사진으로 귀향한 아버지

1945년 해방이 되자 당시 23살의 청년이었던 나의 선친은 평양에서 서울로 왔습니다. 내가 평양을 가기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땅을 내 품에 안겨 사진으로 귀향했습니다. 아버지의 어린시절이 담겨있고 할아버지가 마련했다는 평양시 하수구리 109번지를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고향 땅을 너무 늦게 둘러보셨습니다. 3박4일의 평양과 묘향산 일정 내내 아버지 사진을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평양 공설운동장에서는 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를 만난 듯했습니다. 생전에 아버지에게서 듣고 기억하는 유일한 장소가 평양시 공설운동장에 얽힌 일화였습니다. 23살 청년이었던 아버지가 그렇게 60년이 넘어서야 사진이 되어 그곳에 가셨습니다. 그날은 눈이 부시게 맑은 날이었습니다. 이산가족으로 북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을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데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고맙구나” 꼭 한마디 그 말은 “고맙구나”였습니다.

 

▲ 평양에서 만난 어린이들. 사진=김유철

화분에 담긴 겨레의 생명

오늘도 이 글을 적으면서 에둘러 말하는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아직은 평화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모두 우리 겨레가 넘어가야 할 관문이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야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유일한 길이다.’ 라고 말입니다. 평양 베란다의 화분과 서울 베란다의 화분이 평화의 숨은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화분에 담긴 것은 꽃이 아니라 생명이겠지요. 비록 평양의 아파트 베란다에 움튼 자리이지만 그곳을 자연 삼아 주어진 여건에 충실한 생명이겠지요. 좁쌀 하나에 우주가 들어있듯이 이끼긴 화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평화가 숨어 있습니다. 평화가 전제되지 않는 생명은 죽음과 다름없기에 하염없는 하늘 향한 비나리를 합니다.
“주님, 이 겨레를 도와주소서.”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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