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서 지음/ 문학동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날렵한 유머 감각으로 삶의 비극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농담의 악마’ 박형서의 다섯번째 소설집 『낭만주의』가 출간되었다. 소설쓰기라는 행위에 어떤 한계도 설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비슷한 가짜’가 아닌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해 실험을 거듭해온 작가는 2014년 여름부터 2017년 봄 사이에 발표한 이 6편의 중단편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또 한번 갱신해냈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그는 과거에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추구했지만 그후 소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라는 효용을 믿게 되었고, 이제는 “두 세기 전에 유행했던 한편으론 촌스럽고 또 한편으론 신비로운 저 요란한 허세 속에 서사의 항구적 진실, 다시 말해 우리 길 잃은 작가들의 영원한 주제가 담겨 있지 않았던가” 깨달았다고 한다.

소설집을 여는 첫 작품 「개기일식」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소설의 서술에 직접 개입하면서 서사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 독특한 전개로 박형서 자신이 새로운 스타일을 확립하기까지 거쳐온 고뇌의 시간을 소설화한다. 개연성과 인과를 내세운 소설로 공공의 적과 투쟁해야 했던 시대를 지나, 모방이 아닌 왜곡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주창했던 시대 또한 저물었을 때, 소설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개기일식」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나간 두 시대를 소설가 ‘성범수’의 대학 은사인 ‘칠성장어 최교수’와 ‘다슬기 유교수’로 표상한다. 시간이 흘러 두 교수의 위세도 역사 저편으로 흩어지고, 오랜 시간 자기 시대를 결정하지 못해 소설을 쓰지 못하던 성범수에게 어느 날 깨달음이 찾아온다.
 
칠성장어라면 과감히 지우고 당당하게 채웠을 것이다. 다슬기라면 엉뚱하게 지우고 제멋대로 채웠을 것이다. 성범수 자신은 또 다르다. 신중히 지우고 조심스럽게 채운다. 그게 성범수의 방식이다. (…) 그 원칙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봐줄 만큼 흥미로워야 한다. 다음으로는 앞뒤가 그럴듯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본성에 관해 의미심장해야 한다.(52쪽)
 
소설이란 흥미로운 동시에 그럴듯하고, 결국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이 소설집 『낭만주의』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형서는 규범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동하는 서사에 반드시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 어떤 기발한 상상력도 우리의 실제 삶에서 구현 가능할 법하게 설계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 그런 박형서가 그리는 삶은 ‘불행이 디폴트’인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순간일 뿐임을 거침없이 증명하며 삶의 맨얼굴을 집요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박형서 소설은 비극적인 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쓰기의 방식을 ‘박형서식 낭만주의’라 명명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낭만주의』는 박형서 소설에 도래한 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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