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문건’ 파문 기무사, 고강도 개혁풍

국군기무사령부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렸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을 둘러싸고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계엄 문건을 수사할 특별수사단 발족으로 기무사 개혁 방향에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기무사 개혁위원회가 가동 중인 상태에서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이 겹치면서 기무사를 향한 개혁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문건에 대한 고위 인사들의 대응을 놓고서도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기무사 계엄 문건 후폭풍을 살펴봤다.

 

 

“예전의 기무사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무사의 조직 슬림화와 정치적 중립의무 준수 의무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개혁 작업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이 기회에 기무사 조직을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기무사는 지난해 8월 이석구 사령관 취임 이후 자체 개혁을 추진 중이었다. 인권보호규정을 신설하고 군 간부 신원조사는 장군 진급 등에만 제한적으로 진행하며, 군사기밀 유출 방지와 방첩 대테러 등의 분야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내부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정치댓글 사건으로 조직이 휘청한데 이어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이 터졌다. 조직 축소를 위해 고강도 개혁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tbs 의뢰를 받아 전국 성인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를 한 결과, ‘존치시키되 기존 정보업무를 방첩이나 대테러로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응답이 44.3%로 가장 많았다.

‘군의 정치 개입이나 민간인 사찰을 막을 수 없으므로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4.7%, ‘현행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11.3%, ‘잘 모름’ 응답이 9.7%로 나타났다.

군인권센터는 이와 관련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인 개혁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며 8대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무사를 법률기구로 만들어 임무와 목적, 범위, 한계 설정 ▲기무사령관 민간 개방직 전환 ▲대통령 독대 보고와 수사권 폐지 ▲정보수집 범위를 방첩·대테러·대전복 업무로 한정 ▲정보 활용과 제공 통제 ▲조직 구조조정 ▲견제장치 마련 등이 핵심 내용이다.

 

고위 인사들도 ‘곤혹’

한편에선 기무사가 갖고 있는 핵심 기능을 다른 부대로 이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해킹 등 사이버 이슈는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군사보안은 국방정보본부가, 범죄수사는 국방부 조사본부와 검찰단이 맡아도 임무 수행에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기무사 핵심 기능이 다른 부대로 이관될 경우 기무사는 1950년대 군 방첩대 수준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에 반해 기무사 핵심 기능이 이관될 경우 업무의 연속성을 단절해 군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무시하고 군 정보기관을 불법적으로 활용한 정치권력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무사를 지휘감독하는 국방부는 지난 5월부터 장영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위원회(기무사 개혁 TF)를 운영했다. 기무사 개혁 TF에서는 정치개입과 민간사찰을 엄격히 금지하는 새로운 국군기무사령부령 입법을 포함 기무사 규모와 명칭 등에 대한 개혁안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엄령 검토 문건 수사가 시작되면서 개혁안 발표 일정 등을 조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언이다.

기무사의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에 대한 의혹들도 아직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작성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송 장관은 이후 기무사 측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얘기하지 않고 있다.

문건에는 촛불 시민에 대한 강제진압 가능성까지 담겨 있었지만 국방부가 해당 문건이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중대성을 느끼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송 장관이 ‘계엄령 문건’에 대해 언제, 어떤 내용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는지도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기무사 문건을 최초 보고받은 시점에 대해 “칼로 두부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첫 보고 당시 특전사와 탱크 동원 등 문건의 세부 내용을 뺀 채 요지만 보고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국방부는 송 장관이 문건을 보고 받은 뒤 외부 전문가에게 법리검토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기무사 개혁 TF는 예정됐던 기무사 최종 개혁안 발표를 연기할 것으로 전해진다. 장영달 기무사 개혁TF 위원장은 “최종 개혁안 정리 단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에 수사 상황을 조금 지켜보면서 기무사 미래 방향을 새롭게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보다 수십 배 큰 사건이 일어날 뻔했다”며 “어마어마한 군사반란 예비음모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혁TF엔 장영달 전 국회의원을 위원장으로 최강욱 변호사 등 민간 위원과 현직 군 관계자 등 14명으로 구성됐다. 기무사는 해당 문건에서 촛불집회를 종북좌파 세력 집회로 규정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시 서울 도심에 군 병력을 투입해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진압하는 계획을 세운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준 ‘계엄 문건’이 기무사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