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세 할머니의 집-해남 박길님 할매 집③

 

“꽃은 사그라졌어도, 이름은 놔뚸야제.”

‘九旬(구순) 축하 김백원 김병윤’이라 쓰인 리본이 방벽에 붙어 있다.

“집안 조카들이 구순 때 화환을 해 왔어.”

기억은 사그라지지 말라고, 살뜰하게 매만지고 간직해 온 손길과 마음이 방 구석구석에 깃들었다.

 

▲ 세월 저편 함께 했던 어느 날을 짚어본다.

 

자식들의 결혼식, 손주들의 돌사진 등등 가족 대소사와 통과의례가 담긴 기념사진들이 박물관의 소중한 유물처럼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리본 달린 카네이션 꽃들도 그 아래 자리했다.

그 벽에 간명하게 압축된 한 사람의 생애. 소박하고 장엄하다. 세대와 세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이어지는지 증거한다.

방바닥에 깔린 연분홍빛 이불엔 원앙이 쌍쌍으로 정답건만, 할배(김일택)는 가신 지 오래.

“그때가 내 나이 칠십. 영감은 나하고 다섯 살 새여. 근께 칠십오에 가셨제.”

 

▲ “영감 비개, 내 비개.” 영감 가신 지 근 스무 해건만 장롱 안에서 두 베개는 여전히 나란하다. “보고잔께!” 간수해 온 이유는 그것.

 

자개장롱 속 이불더미 위엔 여전히 베개 둘이 나란히 놓여 있다.

“영감 비개, 내 비개.”

주인 잃은 베개를 고이 간직해 왔다.

“보고잔께.”

네 음절의 짧은 말이 하염없는 마음을 품는다.

“그 시대에는 열여섯 일곱이면 시집간디 나는 스무 살 되드락 우리집서 살았어. 어매 아배가 우리 오빠를 몬자 여우고 나를 여울라고 안 여왔어. 우리 동무들 일곱이 다 시집을 갔는디 혼자 시집을 못가고 있응께 여럽더만. 우리 친정집이 뒤란에 감나무가 열일곱 그루가 조르라니 있어서 나는 ‘감나무집 큰애기’였는디, ‘감나무집 큰애기는 어째 시집을 안 간다냐’ 그 소리가 참말로 여러웠제.”

 

▲ 한 생애가 안방 벽에 집대성되어 있다. ‘곱게 기린 기림 한나’를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도 벽에 걸려 있다.

 

머리가 치렁치렁하니 좋고 여간 이삐고 훤칠하다는 소리를 듣던 큰애기는 스무 살에 드디어 혼인을 했다. 신랑은 강진 군동면,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시집와서 신랑 다리 보고 겁나 울었어. 발을 째까 다쳤다더니 애렸을 때 한쪽 발을 뒤진 것을 안 맞촤갖고 여영 못 걷게 되아분 것이여. 난중에는 나무다리 해갖고 댕겼어.”

눈물은 시집온 그날 하루로 그쳤다.

“이름쟁이가 내 이름이 좋다던만. 내 얼굴에 요 사마구가 나쁠 것 같애도 요것도 복사마구여. 우리 친정에서도 내가 복댕이라고 그랬어.”

 

▲ 백년 가까운 세월의 굽이굽이를 의지적 낙관으로 헤쳐 온 백전노장의 웃음.

 

할매는 무어든 ‘내 복’으로 믿고 ‘내 복’으로 역전시키며 살아온 의지적 낙관론자.

시집온 후 강진에서 살다가 목포를 거쳐 이곳 해남에 터잡고 주욱 살아왔다.

“없이 산께 여그 와서도 놈의집 작은방살이를 6년 했어. 그래갖고 포도시 이 집을 사갖고 이때금 살아.”

할배 몫까지 두 몫을 하고 살았다.

“내 몸땡이로 농사 지서서 울 애기들 키왔제. 영감도 고생 많앴어. 내가 일을 할 적이문 저테서 앙거서라도 도와줄라고 한사코 애를 썼던 양반이제.”

농사일을 하기가 어려웠던 할배는 살 도리를 찾아 점방을 열었다.

“잘 못 걸어댕긴께 방에다 점방을 낼 생각을 했어. 첨부터 이 방에서 했어.”

 

▲ 당신의 영토. 여전히 많은 것들을 기르고 건사하는 할매의 나날

 

할매가 가끔씩 꺼내 보는 주판은 할배가 생전에 쓰던 손때 묻은 유품.

“나는 주판을 우리 영감한테 배왔어. 좋게 갈쳐주제 생전 나한테 뭐이라고를 안해. 존 말로만 한팽생을 살다가셨제.”

할매한테 점방은 할배의 생전 모습 깃든 추억의 처소이기도 하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 몇몇 간간이 들러서 술 한 병이나 담배 한 갑이나 식용유 한 병 사가는 고적한 점방.

더 이상 대물림될 수 없을 것이되, 할매 할배의 한생애가 깃든 또 하나의 역사이다.

“인자 쫌 있으문 이 동네도 없어진다고 하더만. 콜프장 들어선다고.”

쉽게 허망하게 사라져가고 잃어가는 것들이 많은 세상. 아직 그곳엔 단칸 점방이 포도시 있다, 쪽진 머리 할매가 성성히 지키고 있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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