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문 대통령

최저임금 논란을 둘러싼 후폭풍이 대한민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2020년 최저임금(시급) 1만원’ 공약 불이행과 관련 고개를 떨구며 사과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820원(10.9%) 오른 8350원으로 의결했다. 소상공인을 비롯 사용자 측과 노동계 양쪽에서 모두 반발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과 문 대통령의 사과가 이른바 J노믹스의 변화를 암시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다.

 

 

최저임금 후폭풍의 직격탄에 대한민국 경제가 들썩이고 있다.

사용자측과 노동계 모두 불만으로 가득하다. 사용자들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인상’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노동계는 ‘실제 인상률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고 비판했다. 한동안 신중 모드였던 청와대는 마침내 문 대통령의 사과로 상황 정리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사실상 공약파기라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최저임금위 결정을 수용한 것은 정부·여당에서 제기해 온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일정 부분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의 결정 배경과 관련 “우리 경제의 대내외적 여건과 고용 상황,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운 사정 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얘기다. 이미 올해 경제성장률 3% 달성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상반기(1∼6월) 월평균 취업자 수 증가폭은 14만 2000명으로 정부 목표(32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금리인상 가능성, 미·중 무역전쟁 여파 등을 생각하면 최저임금 인상폭의 한계는 분명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득주도성장’ 재강조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선 여전히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2020년 1만원’ 달성이 물리적으로 어렵지만 “가능한 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와 내년에 이어서 이뤄지는 최저임금 인상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서민 소득을 높이고 수요를 활성화해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정책”이라며 “다만 지금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와 맞지 않아서 돈이 돌기 전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무언가 엇박자가 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경영이 타격받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도록 일자리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조속한 후속 보완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근로장려세제 대폭 확대 등 저임금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주는 보완대책도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도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최저임금 안착을 위한 민생입법 추진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추미애 대표는 이와 관련 “정부는 최저임금의 안정적 보장을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입체적으로 동원하는 총력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소상공인을 위해 9월 정기국회에서 카드 수수료 제도 개선과 상가임대차법 등 입법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며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J노믹스가 무게추를 옮기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중심잣대가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세 자영업자·중소기업의 극심한 반발과 여전한 ‘고용 쇼크’ 등 부작용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우선순위’ 변화 조짐

최저임금 정책을 놓고선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 이견도 없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등 부처의 우려가 컸지만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의 고삐를 강조해왔다. 과거 성장 중심주의의 경제 정책이 한계를 보였던 만큼 변화 의지가 확고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나온 통계들이 정책 방향과는 어긋나게 나오면서 청와대의 긴장감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이 본격적인 경제 행보에 나선 것도 이를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인도 국빈방문 과정에서 노이다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는 등 최근 경제 행보를 이어갔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의 우선순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어느 타이밍에 우선순위를 조정할지 정부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최저 임금 관련 사과는 소득주도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정책 우선순위는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용 부진과 투자 둔화 등으로 경제지표가 눈에 띄게 악화된 만큼 현실 경제 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에서 규제개혁 등 혁신성장에 더 방점을 찍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여권 관계자는 “일단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의 세 바퀴 성장전략 기조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 5월말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문 대통령은 “한국에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며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경제 청사진이 최저임금 논란을 기점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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