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주인 노인장이 안내해 준 한 평쯤이나 될 듯한 크기의 방. 그 안엔 그저 이불 한 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잠시 옛날 일이 떠올랐다. 바로 얼마전까지 머슴살이를 했던 집의 내 방 모습이었다. 당시 그 방엔 이불 한 채도 없었다. 한쪽에선 누에가 뽕잎을 먹으며 자라고 있었고 난 그 안에서 피곤한 몸을 누인 채 잠을 자야 했다. 누에가 나의 룸 메이트였던 셈이다.

그에 비하면 이 방은 훌륭한 것이었다. 다른 어떤 룸메이트도 없는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불까지 준비돼 있다. 한참 상념에 젖어 있는데 노인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곤 점심을 먹은 뒤 가게로 나오라고 얘기했다. 노인장은 아버지와 마신 술 때문인지 따로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점심시간도 한참 지난 때여서 배가 엄청 고픈 상태였다. 아침밥도 일찍 먹은 데다 집을 나선 이후 굽이굽이 산길으르 걸어왔기 때문이다. 이발소에서도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다시 안채로 들어갔다. 노인장의 며느리가 사각으로 된 검은색 나무 밥상을 들고 나왔다. 며느리는 밥상을 마루에 내려놓으며 나더러 먹으라고 얘기하더니 대문을 열고 어디론가 외출을 했다. 밥상에 놓여있는 큰밥그릇. 그 안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쌀밥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한쪽 다리를 접은 채 마루에 걸터 앉아 허겁지겁 밥을 떠서 입안으로 몰아넣었다. 꿀맛이었다. 당직골 집에서도 쌀이 떨어진지 오래돼 이렇듯 하얀 쌀밥을 먹는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너무 급하게 먹다 보니 목이 메어왔다. 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약간 높은 위치에 찬장이 있었다. 그곳에 그릇이 보였다. 난 까치발로 그릇을 꺼내려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릇은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아직 일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큰 사고를 쳤으니 혹 쫓겨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이 그릇 깨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대문 쪽에서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난 재빨리 그릇의 파편들을 주워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선 가슴이 콩닥거려서 물도 마시지 못한 채 그냥 허겁지겁 이발소로 되돌아가야 했다.

이발소에 들어서니 노인장은 이미 이발을 마친 한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고, 그 아들은 의자에 누워 있는 다른 손님의 수염을 깎고 있었다.

나는 방금 전의 일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던 노인장이 그런 내 심경을 파악하기라도 한 듯 "오늘은 첫날이니까, 의자에 편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라"고 얘기했다.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됐다. 하지만 마음 속으론 오늘 하루가 빨리 갔으면 하는 생각만 간절했다. 며느리가 언제 들어와서 깨진 그릇을 발견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창밖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서 손님들은 더욱 밀려들기 시작했다. 노인장의 아들인 대머리 아저씨가 텔레비전을 켰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드디어 도시 한가운데서 생활을 하게 됐구나…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발소는 늦게까지 밀려든 손님들로 한밤중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시계는 벌써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노인장과 대머리 아저씨는 그때가 되어서야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발소 안을 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부터 거울을 닦고, 또 하루 종일 손님들 머리를 깎는데 사용한 이발기계와 가위 등도 깨끗이 닦아서 정리해 두었다. 난 그런 과정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이 끝나자 노인장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깨진 그릇 때문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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