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칼럼>

못된 기업(사용자)이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노동조합)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가장 악랄한 방법이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입니다. 주로 파업 등 쟁의행위 중 발생한 손실에 대해 일방적으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책임을 돌리며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액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하는 거지요. 절차에 따라 통장이나 재산에 대한 가압류까지 부과하면 해당자는 모든 경제활동이 봉쇄되어 생활을 이어가기는커녕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절망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감옥에 가는 것이나 해고되는 것보다도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이후 손배가압류)를 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저지 싸움에서도 노동조합은 끝까지 버티었으나 고액의 손배가압류 앞에서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결국은 2003년 김주익 위원장이 죽음을 선택했고,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최강서 조직차장은 158억 원의 손배가압류 앞에서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도 기업과 국가로부터 430억의 손배가압류가 청구되어 노동자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얼마 전 30번째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김주중 씨도, 2009년 파업 당시 옥상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공동정범으로 몰려 해고는 말할 것도 없고 1년 이상의 감옥살이까지 했는데, 그 기간에도 손배가압류로 재산까지 압류를 당했다 합니다. 더군다나 이 분은 회사가 아니라 국가(경찰)로부터 손배가압류를 당했는데, 당시 진압에 출동한 헬기 등 장비의 수리비라든지 동원 경찰의 피해에 대한 치료비 등을 피해자인 노동자에게 전가한 경우입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를 주도하였던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의 관련단체들과 시민들에게 경찰은 5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시위 진압에 동원된 경찰이 본인의 실수로 다치거나 대치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경우에 대해서도 모두 손해배상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기야 2015년 세월호 1주기 추모대회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등에 1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이 청구된 이유 중에는, 경찰버스의 라면이 사라졌다는 것도 포함되었을 정도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해서 손해를 입혔다며 5개 시민단체와 주민, 활동가 116명에게 34억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국가 손배의 경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저질러졌던 국가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최근 경찰청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경찰 개혁위의 시정권고에 대해 ‘사건별로 소송 진행사항 등을 고려하여 조속히 소송을 종결하기 위해 유관부처와 긴밀히 협의’ 하고 ‘화해 조정 등의 절차를 거쳐 권고내용에 부합하게 이행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경찰청이 자신들이 밝힌 입장을 즉각 이행만 했더라면 이번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주중씨의 희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 당시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 중의 하나가 “이게 나라냐?”였습니다. 국민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쌍용자동차 문제의 근본적 해결도 국가(경찰)가 노동자(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부터 철회하는 데서 출발해야합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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