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시험을 보려면 의당 시험지가 있어야 합니다. 시험의 종류도 여러 가지, 성적을 매기려고 학생들에게 보이는 시험에서 취직을 위한 시험, 자격을 얻기 위해서 치르는 자격시험에 이르기까지 시험을 보는 사람이라면 좋은 성적을 내고 합격할 수준에 이르는 점수가 나오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여겨야 합니다. 그런 욕구가 절제되지 않는 한 시험지 유출이라는 잘못된 일은 종식되기 어려운 것임에 분명합니다.  

요즘도 언론보도에 의하면 어떤 고등학교에서, 어떤 공기관에서, 아니면 어떤 입시시험에서 시험지 유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본질적인 욕구의 절제가 없이 법이나 제도를 통해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이 그런 죄악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욕구의 절제가 가능할까요. 역시 인문학 공부를 통한 심성의 도야와 인격의 수양이 깊어지지 않고는 참으로 방지하기 어려운 범행이 바로 그런 죄악이 아닐까요. 이 부분에 다산 자신이 행했던 일을 본인이 기록으로 남긴 일화 하나를 소개하렵니다. 

정조 14년은 1790년으로 다산의 나이 29세 때였습니다. 겨울에 임금이 초계문신들로 하여금 근무처에서 숙직하면서 『논어』를 읽게 하고, 매일 두서너 편씩 강(講)하게 하였습니다. 그때의 이야기입니다. 

“궁궐에서 『논어』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내각의 아전이 와서는 소매 속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보이며 말하기를 ‘이건 내일 강독(講讀)할 논어의 장(章)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며 ‘이런 걸 어떻게 강독할 사람이 얻어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더니 아전이 ‘염려할 것 없습니다. 임금께서 지시하신 겁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지만 미리 엿보는 일은 할 수 없다. 마땅히 『논어』전편을 읽어보리라’라고 하니, 그 아전은 웃으면서 돌아갔다. 그 다음날 경연(經筵)에 나가니 임금이 각신(閣臣)에게 말씀하기를 ‘정약용은 별도로 다른 장(章)을 강하도록 하라’고 했다. 강을 틀리지 않고 끝내자 임금이 웃으시며 ‘과연 전편을 읽었구나!’라고 했다”(자찬묘지명 집중본) 

이런 짤막한 일화에는 참으로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주시관이 컨닝을 하도록 허용했는데도 컨닝으로 시험성적을 올리지는 않겠다는 다산의 인품과 정직성을 알아볼 수도 있고, 진짜 실력과 암기능력을 제대로 파악해 보려는 정조대왕의 신하들에 대한 평가 방법의 뛰어남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정도(正道)로만 행하겠다는 인격 높은 다산의 풍모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기록에 그때 다산은 세 번이나 경연에서 보는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했습니다. 미리 엿보지 않겠다는 다산의 사람됨, 그 길이 바로 시험지 유출을 방지할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현실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철저한 관리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사람 되게 하는 공부가 병행될 때에만 시험지 유출은 막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나 다산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 다산을 정조가 총애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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