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섬진강 마실-오암마을⑤

▲ 홍남희 할매네 앵무새 이름은 ‘연지’와 ‘꼰지’. 혼자 사는 장모님 덜 쓸쓸하시라고 사위가 갖다 놓았다.

오암마을 두 짝

대문 없는 집이다. 여기서부터 우리 집이라고 새장에 든 앵무새가 무어라 무어라 소리를 낸다.

오암마을 홍남희(72) 할매네 앵무새는 이름이 연지 꼰지다.

“노랑이가 연지, 남자여. 꼰지는 여자, 알록달록 이쁘잖여. 어디 갔다 오문 재재구재재구 인자 오냐고 난리가 나.”

촌에 혼자 사는 장모님 덜 쓸쓸하시라고 사위가 갖다 놓은 새 한쌍이다.

혼자 사는 엄마 마음자리 후북하라고 딸이 흰 도화지 위에 그려준 집그림이 마루벽에 기대어 있다.

“우리 둘째 딸, 이름은 김금숙. 마흔 여섯 살이여. 엄마한테 이런 집 지어주고 싶다네. 빨간 지붕 양옥집이여.”

‘그림의 떡’ 아니고‘ 그림의 집’. 그 속에 살 수 없어도 할매의 마음이 깃들 자리 넉넉한 다정한 집.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말갛고 순진한 집이다.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금숙씨의 애틋한 소망이 물큰하게 다가든다.

“옛날에는 이 고샅에 사람이 바갈바갈했는디 인자 몇 집인가, 쩌 우에서부텀(손가락으로 일일이 꼽아본 다음) 열여섯집인개비여. 빈 집이 많애. 할아버지 살아지신 집은 서인가 너인가배끼여.”

 

▲ “우리는 입다룸 한번을 안해 봤어. 우리는 날만 새문 딜다봐.” 홍남희 할매(오른쪽)와 백봉인 할매.

 

할배는 깨 폴러 가고 혼자 사는 할매가 가장 의지하는 짝은 유재 사는 백봉인(75) 할매.

백봉인 할매는 1남3녀를 키워 내느라 오만 장사를 다 했다.

“옷장시 빵장시 안해 본 것이 없어. 장사 틈틈이 호맹이 들고 밭 짓고. 내 살 길은 내가 찾아가야 헌다 글케 살았어. 나는 놈헌티는 그리 못히도 내한테는 독헌 사람이여.”

자신한테는 가을서리같이, 남한테는 봄바람같이 살아온 할매.

“나는 아무 보고도 모진 소리를 안혀. 꼬추밭에 약 안헌게 벌레 돌아다니문 헐 수 없이 죽이제만, 하늘 아래 땅 우에 태어난 것은 다 이뻐.”

풀꽃 하나를 지나치면서도 “이쁘게 잘 커라잉”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할매다.

“풀이고 나무고 짐승이고 사랑을 주문 준 만큼 달라져. 내가 전에 돈사도 했거든. 돼지도 음악을 틀어주문 행복허다고 좋아라고 뛰댕개. 사랑은 주문 또 샘물같이 솟아나와. 애끼고 안 주문 내 손해여.”

열 아홉에 시집 온 남희 할매와 스물 셋에 시집온 봉인 할매의 우정엔 50년 이상의 세월이 쌓였다.

“우리는 입다툼 한번을 안해 봤어. 우리는 날만 새문 딜다봐. 행이나 어디 아플깨비. 먹을 것 생기문 갈라묵고. 존 것 있으문 챙기고. 서로 좋은 질로 가게 헐라고 애쓰고 궂은 디로 가는 것 같으문 그리 가지 마라 말기고, 우리는 글케살어.”

서로 얼싸안고 볼을 부비는 오래된 동무들.

‘행복한 인생이란 도착지가 아니라 지금 걷는 길 위에 있다’고, 금숙씨가 작은 액자에 써서 걸어둔 그 말.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에서 지금 당장 사랑하고 지금 당장 누리는 ‘소확행(小確幸)’을 할매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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