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탐방> 청량리수산물시장

1907년 서울에서 관측을 시작한 이래 꼭짓점을 찍었다. 111년 만의 기록이란다. 한발을 떼기가 힘들 정도다. 덥다, 는 말로는 와닿지 조차 않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야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니 걱정 없지만 전통시장은 난리다. 제품을 꺼내놓고 팔다보니 금세 상해버려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폭염 속 전통시장 상인들의 고통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래서 찾아나섰다. 서울 낮기온 39.6도를 찍던 날이었다.

이전에도 소개해드린 바 있던 청량리수산물시장이다. 푹푹 찌는 날씨. 시장에 진입하기 한참 전부터 비린 향이 스멀스멀 코끝을 간질인다. 뜨거운 열기와 섞여서인지 냄새가 더 비릿하다. 예상했던 대로다. 시장은 한산함 그 자체다. 수산물시장뿐만 아니라 바로 건너편의 청과물시장과 청량리전통시장도 발길이 뜸하다. 평소 사람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청량리 일대 시장들이 무더위 앞에 맥이 빠진 모습이다. 상인들은 땀이 흘러내리는 이마를 훔치며 한 손님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더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모습이 안타깝다.

 

 

시장 입구 쪽엔 그나마 손님들이 좀 보인다. 목포 생물 먹갈치를 3마리 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제주 생물 은갈치도 은빛 자태를 뽐내며 유혹한다. 시장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아, 그러고 보니 진열돼있는 생선이 별로 없다. 벌써 문 닫을 준비를 하는 건가. 그나마 보이는 거라곤 아귀, 갈치, 병어 정도. 상인에게 물었더니 날이 너무 더워 전부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단다. 꺼내 놓지 못한 생선들은 팻말들로 대신한다. ‘생선 냉동실에 있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민어, 도미 냉장고에 있습니다’ ‘제수용 냉동고에 있습니다’ 등.

그나마 수족관이 있는 가게는 덜하다. 살아있는 가재, 소라, 낙지, 전복, 게 등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맘 같아선 당장 그 수족관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 시장 안에서 제일 시원해 보이는 곳이다. 이곳 수산물시장은 아케이드도 설치 돼있지 않아 더 덥다. 내리쬐는 햇볕 뿐 아니라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찜통을 방불케 한다.

 

 

아예 문을 닫고 휴가를 간 가게도 많이 보인다. 그 사이사이 열심히 장사하는 가게를 들여다봤다. 임연수어 1마리 5000원, 부세 6마리 1만원, 동태 2마리 3000원, 국산 자반 한손 2000원, 세손 5000원, 노르웨이 자반 한손 4000원, 두손 7000원, 소라, 굴, 바지락, 홍어 등등. 축 처져있는 문어와 낙지들에게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연산 참조기는 20마리 1만원, 손질 가자미 5000원, 미역줄기 2000원, 해파리 7000원 등.

어디선가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따라가 봤다. 젊은 상인이 주인인 가게. 킹크랩과 로브스터는 얼음찜질 중이다. 새우 30마리 1만원, 국산 오징어 생물 1만원 등. 이외에 멍게, 해삼, 꽃게 등은 전부 냉장고에 보관해놨단다. 다른 가게와 가격이 비슷하다. 젊은 상인의 힘찬 목소리가 그나마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제 전통시장에서도 전부 가격표를 달아놓는다. 대형마트와 다른 점이라면 구매 시 인심을 더 얹어준다는 것.

수산물들이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은 바로 얼음이다. 쉴 틈 없이 얼음이 배달된다. 포대자루에 가득 실린 얼음이 가게로 옮겨지기 무섭게 생선들 위로 뿌려진다. 얼음이 담긴 봉지도 올려놓고 파리 쫓는 기계도 쉴 틈 없이 돌아가지만 오라는 손님은 안 오고 오지 말라는 파리만 날아든다. 얼음 파는 가게만 대목이겠다.

 

 

지난 번 왔을 땐 시장 골목 끝까지 이어져 있던 가게들. 그런데 많이 사라졌다. 손님이 줄어든 탓이다. 시장 뒤편의 가게들은 거의 문을 열지 않았다. 아예 폐업한 곳도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상인들도 많이 지쳐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기라도 하면 그나마 힘이 나겠지만 한산하기만 한 시장 골목은 한숨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평상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전통시장 중 하나인 청량리시장마저 이러니 다른 곳들은 어떠할까. 폭염에 고스란히 온몸을 내맡기고 있는 청량리수산물시장은 일단 아케이드 설치가 시급해 보인다. 당국의 적극적 대책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상인들 얼굴에 흘러내리는 게 비단 땀뿐인 것만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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