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빡빡머리 중학생의 머리를 감기려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당황해하고 있던 나에게 주인장 아저씨는 걱정 말라며 오히려 위로를 해주셨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더니 벽돌 두 장을 가져다 세면대 아래에 놓아주었다. 내 키가 작아서 그랬던 것이니 앞으로는 벽돌 위에 올라가서 머리를 감기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야단을 맞을 줄 알았던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주인장 말대로 다음 손님부터는 벽돌 위에 올라가서 머리를 감겼다. 그랬더니 머리 뒤통수에 물을 부어 옷을 버리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날 이발소 안의 손님들이 실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웃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음 날은 죽산읍내 장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발소 안으로 손님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점심 때 쯤에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머리 깎을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붐볐다. 나중엔 이발소 문을 열어 본 손님들이 가득찬 이발소 안으로 차마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중에 다시 오겠다며 문을 닫고 가버릴 정도였다.

주인장과 그의 아들이 손님들의 머리를 깎고 나면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재빨리 손님들의 머리를 감긴 뒤 의자에 앉게 해서 머리를 말려주는 일까지 어느새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 사진=pixabay.com

 

당시만 해도 머리를 감기다 보면 머리카락이 엉겨붙어서 끈적끈적할 정도로 머리가 지저분한 손님들이 많았다. 어떤 손님은 머리에 때가 덩어리로 굳어진 채 머리카락과 엉겨붙어 있어 두 세 번은 감겨야 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까지 맡아야 했으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대부분 시골 사람들이다 보니 머리를 자주 감지 않는 게 원인이었다. 나도 당직골 집에 있을 때 머리를 감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무더운 여름날엔 친구들과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머리를 물을 적셨던 게 전부였다.

장날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끊이지 않고 이발소 안을 가득 메웠다. 머리를 다 깎고 난 후 머리 감을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오후 3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일에 매달려야 했다. 보다 못한 주인장 아저씨가 밖에 나가더니 빵 몇 개를 사오셨다.

장날에는 원래 밥 먹을 시간도 없다하시며 나와 아들에게 빵을 건네주셨다. 난 처음으로 빵을 먹어보았다. 정말 맛있었다. 달콤함 팥과 하얀 크림이 묻어 있는 그때의 빵 맛이 지금도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든다.

저녁이 되어 갈 무렵이었다. 난 여전히 세면대 앞에서 머리 감기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낯이 익은 사람이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순간 난 잘 못 본 게 아닌가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바로 초등학교 때 나의 담임선생님이셨던 것이다.

순간 나는 눈앞이 아찔해져 어쩔 줄 몰랐다. 아직 채 나를 발견하지 못한 선생님은 이발을 하시려고 윗도리를 벗으신 채 손님들 틈에 끼어 앉으셨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학교에서 한창 공부를 하고 있어야 될 입장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이발소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던 것이다. 차마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여전히 선생님은 나를 못알아보신 눈치였다.

마침내 선생님께서 이발할 차례가 되었다. 주인장이 선생님의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이발하는 의자에 앉으면 바로 앞 거울로 이발소 안을 다 볼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숙인 채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려 해도 한계가 있어 선생님께서 나를 발견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거울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님의 머리를 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만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손님들 머리의 비눗물을 씻어내기 위해선 이발소 한가운데 있는 난로 위의 커다란 양은그릇에서 따뜻한 물을 퍼와야 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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