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의 ‘어른을 위한 동화’> 은혜 갚은 게

▲ 해금강의 수려한 경치

흔히 해금강을 바다 위의 금강산이라 부르지요.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바다 위에 불쑥불쑥 솟아올라 신비로움을 자아낸답니다. 해변의 하얀 모래, 기묘한 바위, 쪽빛 바다, 늘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지요.

해금강은 크게 해만물상, 삼일포, 그리고 북쪽에 있는 총석정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그 중에서도 삼일포는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혀 왔습니다. 적벽산, 용산, 차산 등 서른 여섯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고 맑디맑은 호수가 무려 10여 킬로미터나 펼쳐져 있지요.

옛날, 신라시대 때 네 명의 신선이 이곳에 놀러 왔다가 호수 경치가 너무 좋아 3일 동안이나 머물며 돌아갈 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 전설로 인해 ‘삼일포’ 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요.

해금강 근처에는 삼일포 말고도 시중호, 영랑호, 감호 등 몇 개의 아름다운 호수가 더 있어요. 그 중 시중호에는 재미있는 진흙 전설이 전해 내려온답니다. 해금강을 그리워하는 여러분들께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먼 옛날, 해금강 시중호 호숫가 근처에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날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청년은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 호숫가 펄에서 큰 게 한 마리와 왜가리가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가리는 기다란 부리로 게를 물어가려고 했습니다. 힘이 약한 게는 왜가리에게 잡혀가지 않으려고 집게발로 진흙을 파헤치며 파닥거렸습니다. 저만큼 아기 게들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기 게들은 힘이 센 왜가리에게 감히 달려들지 못했습니다. 이제 태어난 지 보름째 되는 아기 게 한 마리가 엄마가 싸우고 있는 걸 보고 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아가야, 위험해!”

어미 게는 아기 게에게 소리쳤습니다. 아기 게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는 점점 힘이 빠져 더 이상 움직이기조차 버거웠습니다. 왜가리는 뾰족한 부리로 게를 덥석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년은 들고 있던 막대기를 왜가리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왜가리에게 잡혀가는 게가 너무 불쌍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던 왜가리는 한쪽 날개를 막대기에 얻어맞고 게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는 땅에 꼬꾸라져 퍼덕거리다가 겨우 일어나 멀리 도망쳐 날아갔습니다.

청년은 떨어진 게한테로 다가가 다친 부위를 정성껏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해가 설핏 기운 저녁 무렵, 게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왜가리가 또 오기 전에 어서 새끼들을 데리고 가거라.”

게는 마치 청년에게 감사라도 표하는 것처럼 큰 눈을 여러 번 껌벅이며 슬금슬금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기 게들도 어미를 따라 줄줄이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청년은 계속 그래왔듯이 나무를 해서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그런 청년이 못내 안 돼 보였던지 쩝쩝 혀를 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뼈마디가 쑤시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년은 아픈 것을 참고 산에 가서 나무를 했습니다. 나무를 해서 팔지 않으면 식구들이 굶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아픈 몸으로 나무를 해 오던 어느 날, 청년은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호숫가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청년의 얼굴은 창백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참 만에 눈을 뜬 청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진 산봉우리에 주황빛 노을이 걸쳐 있었습니다. 너무도 잔잔한 호수에 노을빛이 얼비쳐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 호수가 정말 아름답구나!’

잠시 호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청년은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수많은 게들이 진흙을 물고 줄지어 물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 게가 진흙을 물고 기어 나오다니.’

청년은 게들의 수선스러움을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청년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자신의 몸이 온통 진흙으로 덮여 있는 걸 알았습니다. 게들이 자신의 몸에 시중호의 진흙을 물어다가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누웠던 자리 옆에 큰 게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게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옛날 자신이 왜가리로부터 구해 준 바로 그 게지 뭐예요.

‘맞아, 바로 그 게야.’

청년은 갑자기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서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쑤시고 저리던 팔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정신도 말짱했습니다. 청년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게들은 청년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일제히 앞발을 쳐들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열을 지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청년은 몸을 깨끗이 씻은 뒤 나뭇짐을 거뜬하게 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몸은 다시 아프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이 신기한 일을 팔다리가 아파서 누워 있는 동네 사람들한테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별 사람을 다 본다는 듯 청년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했습니다.

청년은 직접 시중호의 진흙을 가져와서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발라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의 말대로 아픈 사람들은 모두 말끔히 나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시중호의 진흙은 신경통에 특효약으로 소문이 나서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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