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뢰밭에 던져진 아이들이 있다
여기 지뢰밭에 던져진 아이들이 있다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8.08.16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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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 보기> ‘랜드 오브 마인’(2017년 4월 개봉)
▲ 영화 ‘랜드 오브 마인’ 포스터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니기에 실감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그 당시의 처절한 아픔과 두려움을.

작년 개봉한 영화 ‘랜드 오브 마인’(2017년 4월 6일 개봉)을 소개해볼까 한다. 제89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부문 노미네이트, 제6회 북경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제45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 제88회 전미비평가위원회상 외국어영화상 Top5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덴마크군이 포로로 잡은 독일 소년병들에게 서해안 해변에 매설된 지뢰의 해체작업을 맡겼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져왔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덴마크 해변의 지뢰 해체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덴마크 현대사에서 터부시 되어 왔을 만큼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덴마크를 점령했던 5년의 세월보다도 5개월 동안의 지뢰 해체작업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만큼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진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이처럼 강렬한 실화를 정면으로 다룬 ‘랜드 오브 마인’은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지뢰 해체작업에서 오는 극한의 긴장감을 뛰어나게 살렸다. 나치의 잔해를 독일 소년병들이 처리해야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뒤바뀐 아이러니한 실화를 담고 있다.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10대 소년병들의 얼굴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인간’과 ‘전쟁’의 의미에 관한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하고 싶었다. 다른 여느 전쟁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화려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다. 적과 적이 마주한 상황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관객을 긴장케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 영화 ‘랜드 오브 마인’ 스틸컷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기에 스토리를 우선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부터 찾는, 군인이라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 그들이 지뢰밭으로 내몰렸다.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목숨을 내놓는다. 얼마나 잔혹한 현실인가. 그 와중에 아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무엇을 할지 꿈을 꾼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엿보이지만 반대로 곧 그들에게 내려질 운명 때문에 먹먹해진다.

그들을 통치하는 상사 칼 라스무센(로랜드 몰러). 포로로 잡혀온 독일군 아이들에게 정주지 않으려 평정심을 유지한다. 감정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 더 크게 소리 지르고 구박한다. 하지만 결국 하나 둘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통치자이기 전에 사람인 그 본연의 모습을 내보인다. 분명 그들은 적이지만 전쟁을 떠나 10대 아이들과 군인 아저씨일 뿐이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데려와 죽음의 늪에서 일하게 만드는 현실이 칼 라스무센으로선 혼란스럽기만 하다.

칼 라스무센을 맡은 로랜드 몰러의 연기는 감탄스럽다. 많은 대사가 없지만 속으로 아파하고 내적갈등을 겪는 모습이 스크린 너머로 들여다보인다.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그 안에서 슬픔과 기쁨, 희망, 아픔,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통치자로서 함부로 감정을 내비쳐서도, 약해져서도 안 되지만 그도 분명 인간이다. 그는 그 먹먹함을 소름끼치게 연기해냈다.

독일 소년병으로 출연한 아이들의 연기력을 잴 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맑고 깊은 눈에서 나오는 순수함과 희망 혹은 두려움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독일군은 영국에서 넘어오는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일명 ‘대서양 방벽’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해안선을 방어하고 요새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계획이었다. 이때 긴 띠처럼 생긴 덴마크의 해안선을 따라 200만 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됐다. 역사학자 토마스 트람 페데슨는 종전 후 덴마크 해안에 설치된 지뢰를 해체하면서 생긴 사상자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종전 직후의 과도기 동안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덴마크와 독일의 기록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1945년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지뢰 해체작업에 동원된 인원은 대략 2600명이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는 가슴 아픈 기록만이 남아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전 세계 64개국에는 1억 개 이상의 불발 지뢰가 남아 있어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지뢰 해체 베테랑들조차도 통계적으로 5000개의 지뢰를 해체할 때마다 1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할 만큼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작업이다. 여기에 투입된 독일군 포로 소년병들의 이야기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지금껏 쉽게 언급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충격적이다. 전쟁 후유증에 대한 영화이자 진정한 인간애에 대한 기록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를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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