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법원은 누구의 운동장인가?
친애하는, 법원은 누구의 운동장인가?
  • 진수미
  • 승인 2018.08.20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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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진수미 칼럼

<미스 함무라비>와 <친애하는 판사님께>

 

법조계에 대한 대중문화의 관심이 뜨겁다. 영화 <부당거래>(2010, 류승완)에서 <성난 변호사>(2015, 허종호), <검사외전>(2016, 이일형)에 이르기까지 법조인을 극화하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최근의 흐름이 유의미한 것은, 지금까지 거의 조명되지 않았던 판사 집단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문화, 판사들에게 주목하다

포문을 연 것이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였다. 현직 판사의 원작 소설을 모태로 태어난 드라마는 초임 배석판사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MBC에서는 <판결의 온도>가 국민의 상식적 법 감정과 판사들의 실제 판결의 온도차를 가늠하는 콘셉트의 토크쇼를 선보였다. 지난 달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판사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가공하면서 검사 성추행, 법조 비리와 같은 실제 사건을 드라마에 녹여내어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문화가 법조계에 대한 관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 받는 소수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보루가 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판결이 가진 자의 편에 서는 결론을 보여 주었으므로, 이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이를 뒤집어엎는 파격적인 장면으로 극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드라마는 판사인 쌍둥이 형 한수호(윤시윤 분)가 실종되고 그 자리를 전과 5범인 동생 강호(윤시윤 분)가 대신하게 되면서 생기는 좌충우돌의 사건을 다룬다. 강호가 재벌 갑질 사건을 담당하게 되자, 기소 유예로 재벌 3세를 구하려는 계획에 따르지 않고 법정 최고형인 7년을 선고한다. 현실의 헤게모니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이러한 장면은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그 결과,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시청률 종합순위 10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런데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을 정도로 극적 흥미유발 요소가 적은 판사가 최근 들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요 근래 현실의 사건들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농단 사태 때 헌법재판소 판사의 힘이 대중에게 미디어를 통해 가시화되었던 일이나, 전(前) 대법원장이 연루된 재판거래 사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정의로운 여성 인물로 페미니즘 색채 부각

<미스 함무라비>와 <친애하는 판사님께>에서 우리는 대중이 원하는 판사의 상을 발견하게 된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여성 법조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미스 함무라비>의 신입 판사 박차오름(고아라 분)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법원”이라는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녀는 타고난 친화력과 열정으로 주변 인물까지 변화시킨다.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사법연수생이자 판사 시보 송소은(이유영 분)은 킬러가 되는 꿈을 가졌으나 실현이 어려워서 사법고시를 준비한,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녀는 강호의 부족한 법률 지식과 실무 능력을 보완하면서 정의감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남성 인물들은 냉정한 성정의 모범생으로 설정, 드라마 이전 대중에게 각인된 판사 상에 부합한다.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판사 수호는 가족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차가운 성격에다, 학창 시절 시험만 쳤다 하면 전국 일등을 놓치지 않는 엘리트였다. 그러나 판사로서 재판 거래를 묵인하거나 뇌물을 수수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다.

<미스 함무라비>의 임바른 판사(김명수 분)는 남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개인주의자이다. 그는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한수호와 다르지만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보다 법의 원리원칙을 우선시 하는 냉정한 인물로 그려진다.

<미스 함무라비>와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여성 판사에게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당사자 혹은 가족이 성추행을 당한 과거가 있다는 점이다. 차오름은 십대 시절 피아노 선생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소은은 언니가 의대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또한 소은은 검사 시보를 거칠 때 지도검사 홍정수(허성태 분)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이처럼 상처를 지닌 여성 인물의 활약은 약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그 결과 기울어진 운동장인 사회 현실을 이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배경 서사가 된다.

 

▲ SBS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강자에게 기울어진 현실의 대안 캐릭터

특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법조계의 추문들을 서사에 적극 수용하면서 현실 반영적 성격을 강화한다. 검사 성추행 사건, 재판 거래, 스폰서의 뇌물 공여 등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쌍둥이 캐릭터의 뒤바뀐 삶이라는 서사 코드 속에 현실의 사건사고를 연상하게 하는 각종 사건을 배치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강호가 맡거나 휘말린 것도 의대생 성폭력 사건, 연예인 마약 사건, 음주운전 살인, 재벌3세의 갑질 사건 등 현실의 부조리를 강화하는 강자들의 가해 사건이다. 이러한 서사는 드라마의 현실 비판 의식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임신 3주차 여성을 죽인 가해자는 티어 스틱을 바르고 법정에 출두하여 거짓 눈물을 흘린다.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자 피해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바로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재판 끝났으면 돌아가도 되냐”고 묻는다. 재벌 3세 이호성(윤나무 분)은 반성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준비된 멘트만 반복한다. 선고 후에는 구속을 피하기 위해 자작극에 가까운 상해를 입고 호화 병실에 입원한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판사는 강자들만을 대변하는 변호사, 제자를 성추행하는 파렴치한 검사를 응징할 수 있는 법조계의 마지막 보루로 대중이 소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미스 함무라비>는 대중이 원하는 법조인으로, 정의로우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고뇌하는 성숙한 판사의 상을 그려낸다. 그러나 정답에 가까운 모범적 이미지는 극적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강호라는 전과 5범의 ‘양아치’ 캐릭터로써 극적 요소를 강화한다. 강호는 무식하지만 정이 많은 성격이고, 어릴 때 어머니와 형에게서 생긴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이러한 면모와 윤시윤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강호의 비호감 요소를 희석시킨다. 또한 강호가 뜻하지 않은 오해로 정의의 편에 서는 과정은 웃음을 유발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용한다. 수호와 대조되는 강호 캐릭터는 대중의 엘리트에 대한 반감, 법이 원리원칙보다 약자의 눈물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명하고 성실한 법조인을 기대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법조계를 대표하는 존재면서 힘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대립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판사는 뒷방 늙은이, 검사는 꽃, 변호사는 7급 공무원이나 마찬가지”, “변호사는 돈, 검사는 힘, 판사는 과로사”라는 대사는 이들의 위상과 성격을 말해준다.

판사에 대한 이러한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화려한 힘은 없지만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삶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현자, 물질에 종속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최근 드라마 속 판사의 재현은 법이 이러한 얼굴로 다가왔으면 하는 대중 판타지를 반영한 터일 것이다.

이러한 판타지에 부합하는 법조인이 분명 있을 것이나,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법은 강자의 편에 선 비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디 사법 개혁을 통해 약자들이 최후에 기대게 되는 사법부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상식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수미 님은 글쟁이이며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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