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지난번 글에서 다산은 세 가지를 좋아했다면서 호고(好古)·호독(好讀)·호아(好我)가 바로 다산의 3호(三好)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호고에 대하여 공자도 옛것을 좋아해서 성인의 지위에 오른 위대한 인물이 되었지만 다산 또한 옛것을 좋아해서 그만한 큰 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두 번째 다산이 좋아했던 호독, 즉 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렵니다. 다산의 ‘호학’ 또한 공자의 ‘호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공자야말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학문이었음을 여러 곳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크지 않은 조그마한 읍(邑)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신(忠信)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처럼 호학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公冶)”라고 말하고는 ‘호학’이 어떻게 하는 일인가 까지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기만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만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하게 하며, 도(道)가 있는 분에게 찾아가 올바름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사람을 호학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學而)라고 말하여 다른 어떤 일이야 남들도 자신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겠지만 ‘호학’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공자의 ‘호학’은 다산에게는 ‘호독’인데, 다산은 모든 곳에서 너무나 독서를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학’ 대신 ‘독’이라고 말을 했을 뿐, 실제는 호학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산은 자신의 일대기 격인 「자찬묘지명」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는가를 분명히 말했습니다.

▲ 다산 정약용

“어려서는 영특했고 자라서는 학문을 좋아했노라(幼而穎悟 長而好學)”고 말하여, 학문 즉 책읽기를 그렇게 좋아했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아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도 

“폐족이 되어 글도 못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 내 귀양살이 고통이 몹시 크긴 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만 바르게 하고 있다면 근심이 없겠다”라며 아들들이 독서만 열심히 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다며 아들들이 학문하기를 그렇게 바랐다고 여겨집니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 밖에 없다” “또한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에 붙여 살아갈 것이라고는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학문하는 일 아니고는 다른 할 일이 없다니, 학문만을 좋아하는 다산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18년의 긴긴 귀양살이의 세월동안 500여 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면, 다산이 얼마나 독서를 좋아했고 학문에 빠져서 살았던가를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산은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로 구별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짐승과 구별되지 않는다면서 사람이라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즘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적은 세상, 이런 때에는 다산의 ‘호독’에 대한 생각을 우리도 해보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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