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이발소 주인장이 장날 때마다 수고했다며 준 100원짜리 동전과 손님들이 팁으로 준 1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들은 날이갈수록 불어났다.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내 방 깊숙한 곳에 잘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난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돈이 차츰 불어나다 보니 행여 누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발소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자꾸 신경이 방에 놔두고 온 돈에 쏠렸다. 결국 난 머리를 짜냈다. 그래 읍내에 있는 농협에 저금을 하는 것이야.
그렇게해서 난 시간을 내 농협에 들렀고 창구에 앉아 있는 예쁘장하게 생긴 누나에게 통장을 만들어달라고 해 저금을 할 수 있었다. 누나는 그러는 내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얼굴을 몇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아마도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은 것을 쓰지 않고 저금하는 것인 줄 알았나 보다. 어쨌든 예쁜 누나가 친근하게 대해 주니까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 뒤로도 난 동전만 생기면 농협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그 누나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심지어는 하루에 두 세 번씩 간 적도 있었다. 손님들이 팁으로 주는 돈이 생기는 즉시 농협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통장에 돈이 불어나는 재미도 있었지만 갈 때마다 상냥하게 대해주는 예쁜 누나가 좋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 속에 날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얼었던 강물이 녹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고향 당직골에서는 산과 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죽산 읍내에서는 먼저 사람들의 옷차림부터 변화가 오는 것 같았다.
새학기가 시작되어서인지 방과 후에 많은 학생들이 이발소 앞을 지나다녔다. 내 고향 당직골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문득 나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이발하러 오셨다가 만난 담임선생님이 학교로 꼭 돌아오라고 한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건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생각이 날 때 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일에 더 몰두했다. 그런 어느날의 일이었다. 교복을 입은 한 여고생이 창문 밖에서 손님의 머리를 감기는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복을 보니 그 여학생은 읍내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죽산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모양이었다. 짐작컨대 고등학교 1학년 쯤 돼보였고 갈색 교복에, 검정색 책가방을 든 단발머리의 예쁘장한 누나였다.
만약 내가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이제 갓 초등학교 6학년 나이니까 그 누나가 적어도 나보다 3살 정도는 연상인 셈이었다. 생전 처음 그런 시선을 접한 나는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자랑 같지만 당시 나는 사람들에게 귀엽게 잘 생겼다는 소릴 많이 듣던 터였다. 고1짜리 누나 역시 그런 나의 모습에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어느날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가던 중 우연히 내 모습을 보게 되었나보다고도 혼자 생각했다. 게다가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내가 학교는 가지 않고 이발소에서 매일 손님들 머리를 감기고 있으니 안스러운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어떤 생각으로 매일 나를 보러 오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런 관심을 받아보지 못한 나는 예쁜 누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나도 모르게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면 그 누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누나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은 날에는 손님의 머리를 감기다 말고 창문 밖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다가 이발소 쪽으로 걸어오는 누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콩닥콩닥 가슴이 뛰면서 희열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못 본 척 고개를 쳐박고 손님 머리 감기기에 열중하는 척 했다. 잠시 후 살짝 고개를 들어 쳐다보다가 그 누나와 눈이 마주치곤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얼른 다른 곳으로 얼굴을 홱 돌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누나는 얼마동안 이발소 건물 길 맞은 편에 서서 나를 지켜보다가 어느 날인가 부터는 이발소 창문 바로 앞까지 와서 손님의 머리를 감기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