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감자밭이 된 집터


내 생애 처음 고구마 꽃을 보았다. 그것도 인터넷에 떠 있는 사진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우리 집 마당에 몇 포기 심어놓은 고구마 넝쿨 사이에 마치 누군가가 몰래 가져다 놓은 것처럼 이색적으로 피어 있는 꽃을 직접 보았으니 이걸 무슨 말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생애 처음 무엇을 보았다고 말해야 하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나는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고구마 꽃을 보고 있노라니 감자 꽃 생각이 난다. 지난 5월 어느 하루 감자 꽃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올해는 뭔가 좀 다른 게 있으려나 보다. 무슨 근거를 갖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 생애 그렇게도 많이 핀 감자 꽃은 처음이었던 까닭에, 무엇인가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설렘이랄까 초조감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일 뿐이었다.

예전에도 감자 꽃을 더러 보기는 보았지만, 감자밭 고랑에 드문드문 하나씩 피어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그저 감자 꽃이구나, 감자 꽃이 피었구나, 하는 생각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모든 감자가 일제히 꽃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어서, 굳이 보자고 하지 않아도 눈에 확 띄었다.

마을 앞 길가에 있는 감자밭이었다. 이 밭은 원래 집이 있던 자리였다. 집 주인이 도시로 이사를 간 뒤로 집은 해마다 조금씩 부스러져 갔다. 마침내 지붕까지도 빗물이 새 들어가면서 서까래가 썩어 들어가고, 대들보와 기둥도 썩어서 가운데가 풀썩 주저앉았을 때, 일을 사서 하는 걸로 널리 알려진 마을 사람 한 명이 집 주인의 허락을 받아서 굴삭기로 깨끗이 밀어버린 다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집터가 여기저기 도처에 널려 있었다.

 

▲ 이토록 단아하게 우아한 꽃도 있었구나.

 

그는 해마다 다른 농사를 지었다. 양파도 심어보고 콩도 심어보고, 도대체 안 하는 게 없구나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온갖 종류의 작물을 해마다 다른 것으로 해보고 있었지만, 제때 수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가 막히게도 그는 매해 선택하는 품종마다 그 해 가격이 폭락해서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가 없었고,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판에 어쩔 수 없이 수확을 하거나 트랙터로 갈아엎기 일쑤였다. 그런 그가 금년에는 감자 씨를 트럭으로 사다가 모든 밭에 감자를 심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감자도 올해 가격이 영 말이 아니어서 수확하는 기쁨은커녕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감자 꽃 필 무렵이 되니 온 동네가 꽃밭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다 한 송이씩 드문드문 피었을 때는 그렇게도 무심하게 건성으로 대충 훑어보고나 말았던 감자 꽃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줄줄이 피어 있으니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게 되는 것이어서,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도 보고, 아예 감자밭으로 들어가서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감자 꽃, 그것은 정말이지 묘하게도 생겼다. 꽃 중에 꽃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색깔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기이하게 선정적인 것이 마치 암수가 한 몸에 차악 붙어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생식기를 안으로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 보라는 듯이 싹 다 드러내 놓고 있는 형국이니,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싶어 보고, 보고, 또 보게 되는 것이었다.

 

▲ 고구마 꽃은 더 이상 피지 않았다.

 

감자 꽃이 지고 나니 자글자글 타는 뙤약볕이 시작되었다. 이 뙤약볕이 얼마나 극심했는가 하면,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으로 유명한 주목 잎이 빨갛게 타버릴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름에 피는 꽃들이 죄다 거의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아하고도 시원스럽게 피어나던 옥잠화가 금년에는 간신히 생명이나 유지하고 있을 뿐 꽃은 단 한 송이도 피어내지 못했고, 비비추는 대궁만 겨우 내밀다가 타들어갔고, 벌개미취 역시 시들시들한 채로 꽃봉오리나 간신히 몇 개 만들어놓은 채로 픽픽 쓰러져 갔다.

하긴 생명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질경이와 비듬나물 같은 이른바 잡초로 분류되는 것들이 푹푹 나자빠지는 판에 옥잠화가 어찌 제 구실을 할 수 있으랴. 상사화 같은 알뿌리 식물들도 꽃을 보기는 다 틀렸다고 여겨졌다. 특히나 상사화는 알뿌리가 굵어서 수분도 많고, 수분이 많은 녀석이니 당연히 외부에서 빨아들여야 할 수분 또한 많이 필요할 텐데 빗방울이 하나도 없으니 말라비틀어지다가 결국은 죽어버렸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무식해서 상사화의 생존기술을 몰랐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는 그것을 보았다. 아라비아 사막을 방불케 하는, 내리쬐는 뙤약볕에 그 어떤 잡풀 하나도 살아남아 있지 않은 그야말로 황량한 땅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꽃대를 잡아당기는 듯이 쑤욱 올라와 있는 상사화 꽃 대궁,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너무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어서,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빡거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그만 눈물이 나와 버리고 있었다.

“와따야 참말로 이것이 뭔 일이다냐?”

놀랐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기절초풍이라도 할 것 같았다. 놀람 뒤에는 걱정이 따랐다. 저 여리여리한 것들이 뙤약볕에 타 버리지 않고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인가?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녀석은 다음 날도 죽지 않고, 타 버리지도 않고, 보란 듯이 대궁을 쑥쑥 밀어 올려 키를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부터 그 애처로운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기적인가? 우리 집 마당에서만 벌어진 기적인가? 그렇다면 이 기적은 숨겨야 하는가 막 떠벌리며 자랑을 해야 하는가. 어리석게도 나는 그런 고민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벼락처럼 깨달았다. 상사화는 알뿌리가 커서 수분이 많으니까 자체 수분으로 어지간한 뙤약볕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 바싹 마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상사화

 

그러니까 나는, 상사화를 마당에 잔뜩 심어놓고 매년 그 꽃을 즐겨 왔으면서도 그 생존 기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알고자 하지도 않고 그저 꽃이 피면 너는 정말로 상사병에 걸린 우리 사촌 누이 같구나, 어쩌고 그렇게 감상에나 푹 젖어 있었던 셈이다.

고구마 꽃을 발견한 것도 ‘어느 하루 문득’이었다. 처음부터 그것이 고구마 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매년 마당 한쪽에 길이 10미터 정도로 두 고랑씩 심는 고구마 밭에 피어 있는 그것을 멀리서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나팔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팔꽃 치고는 좀 묘하다,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것도 밥을 먹던 중에 문득,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니 뭐랄까, 흔해빠진 나팔꽃은 아니라는 인식이 아마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새겨졌던 것일 게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그것은 확실히 주위 사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팔꽃은 아니었다. 갯가에 피어 있는 메꽃을 살짝 닮았다 싶기는 했지만 갯가의 메꽃이 우리 집 마당 고구마 밭에 있을 까닭은 없었다.

한달음에 달려가서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나팔꽃은 아니었다. 내 생애 처음 보는 그 꽃은 놀라우리만치 단아하고, 우아한 기품마저 느껴지는 것이어서, 차마 손도 대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로 한참을 멍하니 그냥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야릇한 후광 같은 것이 그 꽃을 감싸 돌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게 대체 뭔 꽃이냐, 하고 꽃이 피어 있는 줄기를 더듬어가 보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게 설마 고구마 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나팔꽃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라우리만치 단아하고 우아한 기품이 감도는 그 꽃이 매달려 있는 줄기는 정녕 고구마였다.

한두 포기만 그런 게 아니었다. 거의 모든 고구마가 고구마 특유의 줄기와는 영 다른 줄기 하나를 따로 만들어놓고 있었고, 그 줄기마다 낱알만한 크기의 봉오리를 수십 개씩 맺어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구마 꽃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그것을 발견했던 셈이었다.

 

▲ 상사병에 걸린 것 같은...

 

“야아 이게 뭐냐. 어인 고구마 꽃이 이렇게도 막 피려고 하는 것이냐 응?”

고구마 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냉큼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해 보았다. 어지러웠다. 신문기사는 신문기사대로, 웹문서는 웹문서대로, 저마다 다른 톤으로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 많은 정보를 정리해 보니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압축이 가능할 것 같았다.

고구마는 원산지가 아프리카 쪽이라서 꽃을 보기 어렵지만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는 꽃이 핀다는 게 그 첫째였고, 북한에서는 고구마 꽃을 백 년 만에 한 번 피는 행운의 꽃이라 해서 고구마 꽃이 피면 축제 분위기가 된다는 얘기가 그 둘째였고, 농업관련 기관에서 고구마도 꽃을 피워낼 수 있게끔 종자 개량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는 기사가 그 셋째였다.

그렇다면 뭐지? 나는 어느 쪽 편에 서야 하는 거야?

어리둥절한 채로 고구마 꽃이 싹 다 피는 날이나 기다려 보기로 했다. 새로 뻗은 줄기마다 촘촘히 달려 있는 꽃망울은 어림잡아도 수백 아니 수천 개는 될 것 같았다. 그 많은 봉오리들이 활짝 만개를 한다면,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을 것 같다는 설렘이 내 안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던 중에 태풍 ‘솔릭’이 북상했고, 우리 집을 포함한 호남지방 전역에 100밀 리 미터가 넘는 비를 쏟아놓았다. 메마르다 못해 황량해진 대지에 젖과 꿀과도 같은 비가 흠뻑 내렸으니, 고구마 꽃도 이제 막 정신없이 피어나겠거니 했지만, 상황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 암수가 함께인 것 같은 감자 꽃

 

처음에 핀 대여섯 송이 외에 새로 핀 고구마 꽃은 한 송이도 없었다. 게다가 처음에 핀 대여섯 송이마저도 이제 가야 할 때가 됐다는 듯 시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일찍 또 달려가 보았지만, 새로 핀 꽃은 역시 한 송이도 없었다. 새로운 꽃이 피려면 꽃봉오리가 부풀어 올라야 하는데 그런 조짐조차도 안 보였다. 줄기마다 촘촘히 달려 있는 꽃봉오리들이 마치 무슨 침묵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었다.

애가 타는 마음으로 가서 보고, 또 보기를 하루에도 몇십 번씩이나 하면서 이틀, 사흘을 곱게 보내고 난 뒤에서야 나는 놀라운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혹시라도 만지면 꽃봉오리가 떨어질까 염려되어 만져보지도 못했던 그것을 그날은 과감하게 한 번 만져보았다. 만지는 순간 그것은 툭 떨어져 버렸다. 그 순간에 알았다. 그 많던 고구마 꽃봉오리들이 그새 다 어디로 가버리고 몇 개 안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개 안 남은 꽃봉오리마저도 생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토록 생기발랄하던 고구마 꽃봉오리가, 몇 시간만 지나면 막 피어날 것만 같았던 그 생명력 넘치던 꽃봉오리가 마치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아무 힘이 없이 살짝 건들기만 해도 그냥 비실비실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런 식으로, 우리 집 마당의 고구마 꽃들은 봉오리만 잔뜩 맺었을 뿐 피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갔다.

고구마 자체는 비가 와서 좋다고 쑥쑥 줄기를 뻗어 나가지만, 꽃들은 비온 뒤의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라고 죽어가는 것이니, 이 놀라운 현상을 나는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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