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 아들, 얼마나 잘하나 아버지 면도 좀 해봐라!"
"그래 우리 아들, 얼마나 잘하나 아버지 면도 좀 해봐라!"
  • 김덕희
  • 승인 2018.09.04 1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그녀는 코스모스를 닮아 있었다. 당직골 우리 집 울타리 너머에 초가을만 되면 흐드러지게 피던 그 코스모스꽃.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듯 가녀린 몸짓을 하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던 그 코스모스꽃.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커다랗고 깊게 패인 눈의 검은색 눈동자. 그녀는 그 눈동자로 창문을 통해 줄곧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때론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도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뻔히 쳐다보고 있는 통에 내가 얼굴이 붉어져 눈길을 돌려야 했을 정도다.

그렇게 매일 그녀는 이발소 창문 앞에 나타났다. 나중엔 서로 익숙해져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와 단 한번도 얘기를 나누어본 적은 없었다. 늘 이발소 창문 밖에서 아무 말 없이 내가 일하는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자취를 감추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가 잠시 밖으로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인 소년에게 그건 너무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인장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영 탐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창문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주인장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곤 문을 열더니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눈치를 챈 것인지 잽싸게 도망을 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그녀는 이발소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린 소년은 그녀가 나타날 시간만 되면 목이 빠져라 창밖을 응시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마음이 아릿해졌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학교로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소년에게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저 괜히 주인장을 원망하기만 했다.

이발소에 취직한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읍내 장날 나오셨다가 내가 있는 이발소에 들르신 것이다. 나를 이발소에 데리고 온 이후 벌써 3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아버지는 몇 년은 더 늙으신 것처럼 보였다. 머리엔 잔뜩 흰눈이 내려 앉아 있었고 덥수룩하기 까지 했다. 수염도 깎지 않아 초췌해보였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보자 주인장 말 잘 듣고 기술 열심히 배우고 있었느냐고 물어보셨다.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자꾸 아버지의 희고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에만 눈길이 갔다.

 

▲ 사진=pixabay.com

 

주인장은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를 무척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물론 내 칭찬도 빼놓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 주름진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이발 의자에 앉으셨다. 그리고 주인장이 직접 덥수룩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손님의 머리를 감기며 이발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세면대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거울을 통해 힐끔힐끔 쳐다봤다. 산적같이 덥수룩했던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주인장의 능숙한 가위질에 마치 사극에서 봤던 상투가 잘려지듯 뭉텅이로 잘려져 툭툭 땅에 떨어져 내렸다. 이발이 다 끝나자 아버지는 산뜻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얼굴은 자르기 전보다 훨씬 더 야위어 보였다. 얼굴의 움푹 들어간 양볼이 꼭 에이브라함 링컨의 모습을 연상케했다.

아버지의 머리를 다 깎으신 주인장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면서 그동안 이곳에서 배운 솜시를 발휘해 아버지께 면도를 해드리라고 했다. "그래 우리 아들! 얼마나 잘하나 아버지 면도 좀 해봐라"라며 아버지께서 함박 웃음을 지으셨다.

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으쓱해졌다. 내 손으로 직접 아버지 면도를 해드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껏 달아올랐다. 이발소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우리 부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아버지께 다가가서 앉아 계신 이발의자를 뒤로 제쳤다. 그리고 비누솔로 아버지의 얼굴에 비누칠을 한 다음 조심스럽게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살이 없어 움푹 패인 아버지의 양 볼을 면도한다는 게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난 손가락으로 들어간 부위의 살을 조심스럽게 잡아 당기며 면도를 해야 했다. <다음에 계속>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