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소비 ‘동반 부진’

서서히 불어오는 가을 바람속에서도 침체에 빠진 국내 경제는 여전히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분기 한국 경제는 예상보다 더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투자와 소비 등 내수경기가 크게 위축됐고 서민들의 지갑이 꽁꽁 닫혔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지속되며 글로벌 경기가 부진했던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내부 요인도 국내 경기를 위축시키는 계기가 됐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기국회 시작과 함께 경제 정책에도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을지 살펴봤다.

 

 

기업도, 자영업자도, 소비자들도 크게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청년들을 비롯 40대 등 주요 연령층의 취업 활동도 예상외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 들어서도 투자를 비롯한 기업ㆍ가계의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됨에 따라 정부가 예상한 올해 연간 성장률 2.9% 달성은 사실상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6%에 그쳤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투자 부진이 꼽힌다. 2분기 설비투자는 전분기 대비 5.7% 감소하며 9분기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건설투자도 전분기 대비 2.1% 떨어지며 2분기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건설투자는 지난 7월 속보치인 1.3%보다 0.8포인트 더 낮아졌다. 당시 집계하지 못했던 6월 일부 실적치를 추가 반영해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나빴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부진과 관련 제조업과 건설업 등 주요 업종에서 기업들이 향후 경기둔화를 우려해 투자를 줄인 요인이 가장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 접어든 7월과 8월 투자를 비롯 주요 지표들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어 경제성장률 회복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조선 ‘흔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국내 설비투자지수는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최장 기간 감소 중에 있다. 그동안 설비투자를 이끌어 왔던 반도체 투자가 올해 상반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 지수를 끌어내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반도체 업황이 내년부터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되며 국내 반도체 회사들이 설비투자 규모를 예전보다 줄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 산업 침체가 지속되면서 관련 투자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산업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건설투자를 나타내는 지난 7월 건설기성은 건축공사 실적이 0.6% 감소하며 전월에 비해 0.1% 줄었다. 건설기성 역시 지난 2월 이후 6개월 연속 감소세다.

건설투자가 부진한 것은 올해 들어 주택 미분양이 늘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인해 지방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7월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6만 3132호로 전월 대비 1.7% 증가했다.

기업체감경기와 소비심리도 좋지 않다. 한은에 따르면 기업들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8월 전체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4로 작년 2월 이후 18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실시한 최저임금의 대규모 인상과 근로시간단축 등 급격한 노동친화적인 정책도 기업 체감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최저임금 등 일부 정부 정책이 고용과 투자 등 기업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로 전달보다 1.8% 떨어지며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CCSI가 기준치인 10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소비심리 하락은 실제 소비 부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3% 증가하는데 그쳐 2016년 4분기 이후 가장 부진했다. 정부소비 증가율도 0.3%로 2015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투자와 소비가 뚜렷하게 부진하면서 올해 3%대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이미 지난 7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0%에서 2.9%로 낮췄다. 민간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2.9% 달성도 힘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민간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하반기까지 투자가 부진할 경우 2.8% 경제성장률까지 떨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규제개혁 등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망했다.
 

‘한가위 전망’도 흐림

한가위 연휴가 있는 9월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올 추석에는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 악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자동차와 조선업계등 제조업의 의 경기전망 악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게 재계의 분위기다.

전국경제인 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결과 9월 전망치는 92.2를 기록하며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BSI 전망치가 100을 밑돌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내다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추석 있는 달(9월 또는 10월)의 경기 전망치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부분별로 보면 수출(98.3)과 내수(98.1), 투자(98.1), 자금(96.4), 재고(102.2), 고용(99.2), 채산성(91.4) 등 모든 부문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전망 악화가 뚜렷한 가운데 그중 자동차·조선업계가 올해 들어 최저치인 67.4를 기록,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전망의 부정적인 주 요인으로 미중 무역전쟁 리스크와 내수악화로 인한 경기침체를 꼽았다. 기업들은 이어 하반기 금리 인상 우려와 인건비 부담도 부정적 요인으로 응답했다.

이와 함께 휴가철에 따른 생산 감소와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8월 BSI 실적치는 91.1로 40개월 연속 기준선(100) 이하를 기록했다. 부문별로 보면 내수(92.8), 수출(94.7), 투자(96.4), 자금(95.6), 재고(102.5), 고용(98.9), 채산성(93.9) 등 모든 부문의 실적이 기준치에 미달했다.

한경원 관계자는 “각종 경제지표가 경기둔화를 나타내는 가운데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할 때"라고 진단했다.

최근 경제문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일단 현 정책 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과거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경제라는 새 패러다임으로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를 되살려야 하는 게 우리 정부가 향하는 시대적 사명"이라며 "그런 사명감으로 정부는 우리 경제정책 기조를 자신 있게 흔들림 없이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경제 패러다임은 결국 우리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했고, 극심한 소득 양극화와 함께 불공정 경제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요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저성장·양극화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무조건적 반대가 아닌 경제정책의 보완대책을 함께 찾는 생산적 토론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이른바 J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화두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위기를 만난 현 정부 경제대책이 한가위를 맞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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