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200년 전에 다산은 『경세유표』를 저술하였습니다.

“나라를 인간의 신체로 견주어보면 털끝 하나인들 썩고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一毛一髮 無非病耳 及今不改 其必亡國:경세유표 서문)”라고 말하여 망할 지경에 놓인 나라를 한없이 걱정했던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임금 정조가 1800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해 11세의 어린 순조가 용상에 오르자, 처음에는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세도를 부리며 나라를 흩트리더니, 얼마 후부터는 순조의 처가인 안동 김씨의 세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탐관오리들이 날뛰고 매관매직의 악습이 세상을 흔들면서 썩어가는 나라의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1801년부터 귀양살이에 들어간 다산은 역적죄인의 신분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릴 뿐, 잘못되어가는 나라를 위한 구제책을 건의할 길도 막힌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산은 불타는 애국심을 이겨내지 못해, 유배 말년에는 나라를 건지고 인민들을 구제할 방도를 연구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는 인격을 수양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경학(經學)공부에 심혈을 기울여 수백 권의 저서를 마무리하였으나, 바로 나라 건지는 경세(經世)의 학문에 정성을 기울여 일표이서(一表二書: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저술하였으니, 책의 내용대로 해야만 나라가 망하는 길을 막을 수 있다는 뜻에서 저술한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라와 인민을 구제하여 나라가 망하지 않게 하자던 다산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산이 세상을 떠나고(1836) 74년 뒤인 1910년, 나라는 망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정확하게 적중시킨 다산의 예언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많았다면 그런 불행이야 왔겠습니까. 식민지에서 벗어난 1945년, 새로운 공화국의 탄생은 어디로 가버리고 남에는 미군, 북에는 소련군이 점령하여 끝내 남북이 분단되는 민족의 비극이자 세기의 불행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광복 후 73년, 6·25의 참상에 12년의 자유당 독재와 부패 공화국, 이어지던 18년의 박정희 독재정권,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던 군부독재 시대,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힘들게 그런 시대를 보냈던가요, 독재 권력의 유지에 가장 많이 이용된 요령은 바로 분단장사와 안보장사였습니다. 독재라는 물건을 팔아먹을 수법으로 분단과 안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민족 분단을 그렇게 악용해 먹었습니다. 

금년 연초부터는 위장된 장사수법으로 물건 팔아먹기에 꼭 유리하지만은 않을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판문점 선언’이 나오면서 그런 장사놀음은 통하기 어렵다는 많은 징후가 있지만, 아직도 일부 세력들은 그 ‘위대한’ 위력을 차마 잊지 못하고 어리석은 수법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는 되지 않을 조짐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그렇게 바랐던 다산의 뜻이 요즘에 더욱 새롭게 생각됩니다. 남북의 통일은 뒷일이고, 우선 화해와 교류의 활성화로 이제는 더 이상 분단장사와 안보장사를 통한 독재로의 회귀만이라도 막아야 합니다. 친북·좌파·빨갱이 등 얼마나 많이 우려먹던 단어인가요. ‘노루 친 막대기 3년 우려먹는다’는 속담은 이제 쓰지 않는 말이 되기만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또 반드시 망하고 만다’고 다산은 말할 것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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