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섬진강 마실-반용마을 ④

▲ 강물 따라 만나는 풍경. 어디라도 발길 붙들린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같은 강을 보듬고 앉은 지붕 낮은 집. 그 집엔 황점순(83) 할매가 산다.

회치미 살던 큰애기는 열여섯 살에 반용마을로 시집왔다.

“일본놈한테 처녀 공출로 잽혀갈깨비 애기를 보낸 거여.”

서른 살에 남편을 보내고 5남매에서 아들 하나를 먼저 보냈다.

 

▲ 황정순 할매

 

“전장 치르고 난 뒤라 애기들 데꼬 보리죽도 못 묵고 죽을 뚱 살 뚱 살아나왔어. 그때 생각허문 아득혀.”

큰물 포도시 건너고 나니 어찌 그 물을 건너왔을꼬 돌아

보기도 무서운 심정이다. 헤쳐나온 삶의 굽이굽이가 아득하다.

황점순 할매한테는 이 강마을의 여름 뱃놀이가 참 좋은 시절로 남아 있다.

“옛날에 째깐헌 조롱배가 한나 있었어. 진 간짓대로 밀고 댕기는 배여. 동네 젊은 사람들이 태와줘서 몇 번 탔지. 여러니 타고 앙거서 물에다 손 넣어 보고 웃고 그거이 뱃놀이지.”

 

▲ 이곳으로 오시라는 환대의 몸짓. 마이산캠핑장 앞
▲ 마음 속까지 숲과 강물의 푸르름으로 물드는 그네

 

칠월백중에 술맥이를 할 적에는 마을사람들이 배를 타고 깽매기를 치면서 사뭇 위에까지 오르내리면서 놀았다.

“나 시방 테레비하고 둘이 살아. 밤에도 쟈(테레비) 말소리 듣고 눠 있어. 쟈가 있어서 웃고 울고 그려. 오늘은 옛날 심청전을 그렇게 잘해. 눈물 흘림서 봤어.”

흘러흘러 강물은 큰바다로 가고, 이 강가 조그만 마을에서 어매와 아비들은 아이들을 키워 큰세상으로 내보냈다. 오늘 이 강마을의 고샅에 들에 밭에 허리 고부린 이들의 업적은 그토록 위대하고 찬란한 것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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