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몰아치는 '부동산 광풍'

전세계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삶의 안전과 행복을 뒷받침하는 주택은 더 이상 거주지로서의 용도만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전세계 주택가격지수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보다 높아져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주택시장 과열의 원인으로 꼽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콩 집값이 이 63개국 가운데 주택가격 상승률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45위에 올랐다.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집값 상승을 살펴봤다.

 

 

지난 8월말 서울 일산의 한 식당가.

하루 종일 마트에서 배달 업무를 한 40대 두 남성이 일을 마치고 술잔을 맞댔다. 저마다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하소연하며 한숨을 내쉰다. 다른 무엇보다 자녀들의 학원비가 만만치 않다. 결국 이들의 술자리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마무리가 됐다.

“지금은 어렵지만 대출을 받아 수도권에 사놓은 땅이 있어요. 그것만 오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에요.”

“오, 그래. 나도 그 근처에 집을 한 채 사놨는데.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결국 두 사람은 눈치 속에 서로 신경전을 벌이다 연장자가 술값을 계산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대출을 받아 주택은 보유하고 있어도 막상 현실 세계에선 지갑이 꽁꽁 닫힐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로또’ 보다 확률이 높다는 부동산 투자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
 

‘부익부 빈익빈’

삶의 질을 좌우하는 주택이 투자의 대상으로 바뀐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지수(Global Real House Price Index)’는 160.1로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직전 정점을 찍었던 2008년 1분기의 주택가격지수(159.0)를 넘어선 것이다.

IMF는 2000년 1분기를 기준(100)으로 분기마다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지수를 발표해 왔다. 물가 상승을 반영한 세계 63개국의 실질 주택가격을 단순 평균해 구한 값이다.

IMF 주택가격지수는 2008년 1분기에 정점을 찍었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곤두박질쳤다. 2007∼2008년 세계 각지에서 주택가격은 급락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을 알렸다. 주택가격지수는 2012년 1분기 143.1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꾸준히 회복했고 최근엔 3분기 연속 상승했다. 6년 전 저점 대비로는 약 12% 올랐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주택가격 상승과 관련 세계 경제 회복세와 함께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장기간 초저금리가 계속된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63개국 가운데 48개국에서 올해 1분기 또는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실질 주택가격이 올랐다.

기록적인 폭등을 거듭한 홍콩은 지난 1년간 11.8% 올라 주택가격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유럽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아일랜드로 집값이 11.1% 올랐다. 이어 아이슬란드와 포르투갈도 10.4%와 9%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캐나다와 독일, 뉴질랜드는 각각 5% 가량 상승했고 미국은 3.9% 올랐다.

아시아에선 홍콩 다음으로 필리핀(7.2%), 태국(6.4%) 순이었다. 중국은 3.2%, 일본은 1.5% 올랐으며 한국은 상승률이 0.3%(45위)로 낮은 편이었다. 대만과 싱가포르도 1% 미만이었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집값이 17.1%나 내렸으며 카타르와 페루는 10% 안팎의 하락률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소득이나 임대료보다 빠르게 오랫동안 상승하면 주택 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 비해 우리 나라의 상승세가 낮은 것은 서울 등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 받아 ‘부동산 투자’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역대급 규제를 펼치고 있지만 서울 집값은 사상 최장인 49개월째 오르면서 주요 단지들의 실거래가격은 속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특히 서울은 최근 1년간 전 세계 주요 도시 고급주택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부동산 정보 업체인 '나이트 프랭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상위 5%' 고급 주택의 가격 상승률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25%나 급등했다. 런던, 뉴욕, 광저우, 도쿄 등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 43곳 평균 상승률 4.8%의 5배를 웃도는 셈이다.

2위인 중국 광저우의 올해 1분기 고급 주택 상승률은 16% 수준으로, 서울보다 무려 9% 포인트나 낮다. 미친 집값으로 유명한 홍콩도 6.9%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일본 도쿄 3.4%, 미국 뉴욕 1%, 영국 런던 -1.1%과 비교하면 서울 집값 상승은 이례적일 정도다.

정부와 여당의 설득에도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등의 방식으로 2022년까지 수도권에 신규로 14곳의 공공택지를 확보하고 추석 전에 후보지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에는 동의하지만 그린벨트 해제는 안 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불법 건축물 등이 들어서 어느 정도 훼손된 그린벨트의 일부 해제 논의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그린벨트가 해제될 것으로 거론되는 서울시내 후보지는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 양재동 우면산 일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인근,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인근 등이다.

이들 그린벨트 지역이 풀리게 되면 서울시 땅값은 다시 한 번 들썩일 수 밖에 없고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게 서울시의 판단이다.

하지만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수도권 집값 상승은 여전히 식을 주을 모르고 있다. 과천, 분당, 광명 등 최근엔 인근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오름세가 워낙 빨라 당사자들까지 놀라는 눈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분당신도시 아파트값은 12.02% 올라 경기도 내에서 가장 상승률이 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의 3.3m²당 평균 아파트값은 2085만 원(8월 말 기준)으로 집계돼 ‘버블세븐’으로 불렸던 2006년 말(2016만 원) 가격을 뛰어넘었다.

버블세븐은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시장 과열로 집값에 거품이 끼어 있다며 서울의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용인시, 안양시 평촌 등 7곳을 지칭했던 곳이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서울 집값이 크게 뛰면서 주변으로 수요자들이 눈을 돌리는 이유가 한 몫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 규제에도 투자자가 몰리면서 매물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과천도 만만치 않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과천 집값은 지난 주에만 1.38% 올라 전국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가 과천에 신규 택지 지정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린벨트 시장까지 들썩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들썩이고 있는 글로벌 집값 상승 바람에서 한국은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남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어 언제든 불안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효율적인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