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새우가 없는갑다.


“야 수복아, 우리 새비 잡아서 밥 비벼먹기로 했거든. 넌 안 갈래?”

뽕밭의 초보 신선 오형렬이가 나를 유혹한다. 새비라니, 새비, 오 새비,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도 많이 접했던, 그렇게도 정겨웠던 이름 새비를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하긴 그게 어디 새비뿐이랴. 서울특별시민 노릇 이십여 년 동안 내가 잊은 것은 딱히 무엇이라고 지정할 것도 없이 많다. 엄청나게 많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냥 잊은 것이라면 자괴감이라도 없을 테지만, 차별 받지 않고 싶다는 마음에 궁여지책으로, 의도적으로 잊고자 노력해 왔으니 부끄럽다 못해 참괴할 지경이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선뜻 전라도라고 말하지 못하고 우물우물하다가 서울, 해버리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던 시절이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른 게 아니었다. 전라도 고향을 들켰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플러스 그런 거짓말이나 해야 하는 나 자신의 존재감이 너무 가볍다는 데서 오는 분노가 내 얼굴을 뜨겁게 했을 뿐이었다.

그 시절은 이제 먼 과거지사가 되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초라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 초라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새비라는 단어에서 불쑥 튀어나올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 동창들이 오기 전에 우선 한잔...

 

고창에는 새우 양식장도 많지만 자연산 새우도 많다. 중하, 대하 이런 새우들이야 뭐 기본이고, 새우젓을 담그는 새끼 새우들이 몰려드는 계절이면 바닷물이 그냥 은구슬 천지가 된다. 밀려드는 밀물을 따라 새끼 새우들이 몰려오면서 물 위로 톡톡 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소나기라도 쏟아지는 것 같고,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작은 은구슬이 바다 가득 데굴데굴 구르는 것만 같아지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갯벌 아주머니들이 새끼 새우를 잡아다가 새우젓 담갔다는 말은 더러 듣고 있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새우 잡이를 하는 현장을 멀리서 목격한 적도 있었다. 새우잡이 현장을 멀리서 보았던 날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넓이가 사 미터도 넘는 긴 투망 같은 것을 물속에서 끌고 있는데 나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싶어서였다. 무엇보다 그 긴 도구를 싣고 다닐 차량이 내게는 없었다.

그런데 뽕밭의 초보 신선 오형렬이가 그 굉장한 도구를 주문 제작했다는 거였다. 하긴 그는 트럭을 몰고 다니니까 그쯤은 일도 아니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녀석은 주문 제작한 도구로 새끼 새우를 벌써 팔 킬로그램인가를 잡았단다. 그런데 소금을 이십 킬로그램이나 처넣어버리는 바람에 소금탕이 되고 말았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더 잡으려고 하는 참인데 마침 초등학교 동창생 녀석들이 그 얘기를 듣고는 옳거니, 하고 쫓아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동창생 녀석들이 옳거니 한 이유는 새우젓 때문만은 아니었다. 금방 잡은, 펄떡펄떡 뛰는 새우를 따뜻한 밥에 넣고 초장을 쳐서 비비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도 모를 정도의 맛이 난다고, 병일이 녀석이 그렇게 엄청난 구라를 틀었던 모양이었다. 새끼 생새우로 밥을 비벼 먹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런가?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기분이긴 했지만 비빔밥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 새우를, 새비를 내 손으로 잡아보는 것이었다.

 

▲ 새우를 잡으러 바다로~

 

무슨 첫사랑이라도 만나기로 한 것처럼 가슴이 설렌 나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약속된 장소 바람공원에는 아직 아무도 안 나왔다. 주인공 격인 오형렬이가 도착했을 때부터 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흐려진다 싶더니 금방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툭툭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가던 날이 장날이나 아닌지 모르겄네 이거?”

새우잡이는 날씨가 좋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흘려듣고 말았지만, 막상 내 손으로 새우잡이를 하려고 보니 뭔가 심상찮다는 느낌이어서 은근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뿐이고, 설렘은 길게 지속적으로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새우를 잡는다, 새우를, 아하, 이 무슨 뜻밖의 행운이란 말이냐. 역시 친구란 잘 두고 볼 일이다.

혼자 속으로 그런 생각을 열심히 뒤적거리며 형렬이가 트럭에 싣고 온 새우잡이 도구를 살펴보기로 했다. 보는 순간 "에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멀리서 볼 때는 뭔가 굉장하다 싶었는데 실물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또 있을까 싶었다. 사 미터 길이의 대나무 두 개를 중심으로 틀을 짜고 모기장을 길게 연결시킨 일종의 커다란 뜰채였다. 이런 싱거운 물건을 두고 나는 그렇게도 무슨 요술램프라도 멀리서 언뜻 스쳐본 듯이 선망하고 있었다니, 피식피식 웃어가며 하늘을 보자니 날이 개기는 틀린 것 같다. 빗방울은 점점 개수가 많아져 가는데 물은 아직도 멀었다. 게으르게 천천히 들어오고 있는 밀물 속으로 마중이라도 나가듯이 들어가서 새우 잡이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나의 제안을 형렬이 녀석은 콧방귀로 뭉개 버린다. 굳이 멀리까지 들어가서 힘 뺄 일이 뭐냐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들어가고 싶다. 들어오는 밀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냥 서 있기라도 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밀물 마중을 나갔다. 그리고 물벼락을 만났다. 갑자기 소나기가 와악,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싶더니 뚝 그쳤다.

 

▲ 두 시간 동안의 성적표

 

소나기가 그친 뒤에는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물이 얼른 들어오기를 기다렸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고, 동창생 녀석들의 도착을 기다렸다.

“자기야. 암만 해도 텐트를 쳐야 쓰겄는디?”

형렬이의 아내가 남편을 쳐다보며 울상을 짓는다. 형렬이는 또 콧방귀나 뀌고 말았다.

“뭔 미친놈의 비가 계속이야 올라고.”

하지만 비는 멈추지 않는다. 부슬부슬 내리다가, 와악 쏟아지다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를 되풀이하니, 좋은 소풍이 되기는 틀렸다. 형렬이 아내는 텐트 얘기를 십여 분 간격으로 반복하고 있었고, 형렬이는 그때마다 텐트는 무슨, 하고 싹 무시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입맛을 쩟쩟 다시며 텐트를 치기로 했다. 비상용으로 싣고 다니는 텐트가 트럭에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야 술맛 나겠다. 아까 망둥이 얻어온 걸로 쇠주나 하자.”

텐트 치기가 끝나자 형렬이 녀석은 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물도 어지간히 들어왔고 하니, 얼른 새우 잡이를 시작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투로, 녀석은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소주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의 아내 영숙씨는 망둥어를 꺼내는가 싶더니 칼을 꺼내고, 도마를 꺼내고, 초장을 꺼내고, 묵은지를 꺼내는가 싶더니 상추에 고추에 별별 것들을 자꾸 꺼내 놓는데 그 모양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기도 안 막힌다.

“아니 언제 이 많은 것들을 다 챙겨 왔대야?”

“아 동창들이 떼로 몰려온다니께 그랬제.”

 

▲ 영구는 티끌을 골라내고.

 

떼로 몰려온다는 동창생 녀석들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인다. 그 녀석들은 방울토마토에 수박에 온갖 특수작물을 전문적으로 길러 내는 프로들이라 시간관념이 우리와는 다르고, 때문에 하루 일을 어지간히 끝냈다 싶은 뒤에나 출발할 것이다. 비도 오고 하니 차라리 안 왔으면 좋겠다,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지만 그 말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빗속에서 마시는 술맛이 꽤나 근사하긴 했다. 그대로 계속 술이나 마시며, 콧노래나 흥얼거리는 것도 괜찮겠다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우잡이에 대한 설렘이 더 컸다. 나는 어서 빨리 들어가자고 보채고, 형렬이 녀석은 잠깐만, 한 잔만 더,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다가 드디어, 마침내 그 ‘굉장한’ 도구를 어깨에 메고 비가 내리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았다. 새우잡이가 멀리서 볼 때는 꽤나 멋스럽고 낭만적으로 보였지만, 실제의 작업은 겁나게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도구 자체는 오 킬로그램도 채 안 되지만, 그것을 물속에 넣고 끌어당기자니 그 무게감이 족히 백 킬로그램은 된다는 느낌이고, 게다가 바닥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긴장감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고무신을 신고 물속을 걷자니 신발이 자꾸 벗겨진다.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속을 걷자니 이번에는 조개껍질이며 굴 껍데기 따위들이 발바닥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마치 송곳으로 콕콕 찔러대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형렬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너무 이상하고 수상해서 너는 안 아프냐, 했더니 나도 아퍼 인마, 한다. 뭐냐 이거. 신선이라고 몇 번 불러줬더니 이 녀석이 진짜로 신선 행세를 하나?

 

▲ 이 무슨 청승인가.

 

그나저나 뭔가 이상하다. 새우를 잡자고 빗속에 물속으로 들어왔건만, 새우가 있다는 느낌이 없다. 새우를 직접 잡아보지는 않았어도, 물이 들어올 때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작은 새우들이 정강이를 가볍게 툭툭 치는 방식으로 간지럼을 태우며 지나간다는 경험 정도는 나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물이 허벅지를 넘어 엉덩이까지 차올라 있는데도 내 몸을 건드리는 생명이 전혀 안 느껴진다. 그제야 문득, 그 생각이 났다.

“새우는 햇볕이 쨍쨍할 때 잡는 것이라우.”

그렇다. 물속에 새우는 없었다. 비가 내리면 새우도 일을 안 하고 어디 한 군데 모여서 노는 모양이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 새우 잡는 것 좀 보자고, 구경까지 와 있었지만 우리는 점점 지쳐만 갈 뿐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를 헤매고 난 뒤의 성적표는 놀라워서, 망에 걸린 새우는 이백 그램이나 되려나 삼백 그램이나 되려나, 하여튼 그 정도뿐이건만 쓰레기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 사이에 동창생 녀석들이 도착해 있었다. 수박 전문가로 고창에서도 알아주는 그 유명한 이름 영구도 왔고, 유식이도 왔고, 한수도 왔고, 생새우 비빔밥 노래를 불렀던 방울토마토 전문가 병일이도 왔다. 그런데 영구는 낚시를 자주 다녀서인지 뭔가를 아는 모양이다. 대뜸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새우 바구니 속에서 작은 쓰레기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 이삼인용 텐트에 열한 명이 우글우글~

 

물에서 나온 뒤로 나는 춥기 시작했다. 턱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경험이 선생이라고, 형렬이는 새우 잡이 경험이 있는 까닭에 여분의 옷을 준비해 왔지만, 나는 그런 것도 없고 보니 그저 춥기만 하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으면 추위로 그만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여기저기 아무 데로나 빗속을 막 걸어대고 있자니 여인네들이 소리를 질러싼다.

“아니 왜 비를 맞고 난리래여?”

추워서 그런다고 했더니 텐트 안으로 들어오란다. 들어가서 앉을 데가 어디 있다고 들어간단 말인가. 잡아먹힐까 무서워 안 들어간다고 했더니 아예 정색을 하고 막 나무란다. 그러다가 감기라도 들면 누굴 원망할 거냐는 거다. 하는 수 없이 들어가기로 했다. 이삼인용 텐트 안에 열 명도 넘는 인구가 뽀짝뽀짝 붙어 앉고 보니 그 기분도 참 별스럽다. 그런데도 술잔은 잘 돌아가고,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얘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야,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언제 우리가 이 나이에 이런 기도 안 막히는 천렵을 해볼 것이냐 응?”

시끌벅적한 속에서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이 한 마디가 우리 모두를 아연 엄숙하게 했다. 이십대 청춘 시기에나 할법한 이런 기막힌 천렵을 이 나이에 한다는 것, 이 나이에, 이 나이에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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