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정확한 날짜야 기록에 없지만, 앞뒤의 시를 참고해보면 귀양살이 4∼5년째이던 1804년경의 시로 여겨집니다. 강진읍의 동문 밖 샘거리에 있던 주막집(뒤에 「四宜齋」라고 이름 지은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무르던 때의 가련한 신세가 그대로 보이는 시가 참으로 많습니다. 고독과 슬픔에 잠겨 있을 때가 많고, 한탄과 걱정으로 가득 차있는 시가 많습니다. 시 제목에서 그런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새벽에 앉아서(曉坐)」·「혼자 웃다(獨笑)」·「걱정에 싸여(憂來)」·「걱정을 떨구다(遺憂)」·「궂은 비(久雨)」·「8월 19일 꿈에 얻은 시(八月 十九日夢得一詩…」 등이 모두 그런 시였습니다. 

 

오는 수심 어떡하며 오는 늙음 어이하리

구슬픈 가을 하늘 물결만 더 일렁이네

막걸리 더 가까이 하느라 소주는 멀리하고

혼자서 장가 지어 단가와 함께 부르지

백발이 아직 검은 머리보다야 적고

악인들 보다야 끝내는 호인들이 많다네

저처럼 맑은 풍월이 창밖에 있는데

구구하게 제비집 생각할 게 뭐라던가
 

爭奈愁何奈老何

秋天憭慄水增波

漸交濁酒排燒酒

自作長歌和短歌

白髮尙於玄髮少

好人終比惡人多

一窓風月淸如許

豈必區區慕燕窠



주막집 골방에 「사의재」라는 이름을 걸고, 수심·근심·걱정·한탄을 가슴에 품고서도 『상례(喪禮)』와 『주역(周易)』 공부에 심혈을 기울였던 귀양살이, 사색과 학문 연구로 외로움을 극복해가던 다산의 모습과 심정이 잘 드러난 시입니다.   

다산은 이 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했습니다. ‘일창풍월(一窓風月)’이라는 네 글자와 마지막 구절의 ‘연과(燕窠)’라는 글자는 꿈에서 얻었던 글귀라고 스스로 말하였는데, 모두 의미가 깊은 글귀였습니다. ‘풍월’이야 만인이 주인이기 때문에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고, ‘제비집(燕窠)’이란 백낙천의 「감흥시(感興詩)」에 나오는 대로 안온하게 살아갈 자신의 소유인 집의 뜻이었으니, 비록 유배지의 허름하고 비좁은 골방이지만, 마음 비우고 편하게 여기니, 풍월의 주인도 되고, 제비집 따위 부러워하지 않고 그냥저냥 살아가노라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마가 벗어질 듯했던 여름의 더위, 여름은 결코 물러가지 않을 것처럼 맹위를 부린 찜통이었지만, 계절은 숨기지 못합니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지나자, 가을이 성큼 오고 말았습니다. 풍월이 그처럼 맑고 깨끗하며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인 듯 가을 물과 높고 먼 가을 하늘은 같은 색깔이라는 말이 그렇게 부합됩니다. 태풍과 폭우가 그렇게 지구를 할퀴고 갔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역시 가을을 즐기며 그런대로 살아갑니다. 

밀려드는 수심, 어떻게 막으며, 저절로 늙어가는 늙음을 누가 막으리오.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소주는 멀어지고, 검은 머리가 그래도 흰머리 보다야 많으니, 아직 꼬부랑 늙은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옛날 노인들은 40에 일로(一老)‘라고 하여 마흔이면 한 번 늙는다 했으나, 그때 나이 44∼5세이던 다산, 아직은 정정했습니다. 고독과 애수와 싸우며 다산은 더 늙기 전에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룩해내고 말았습니다. 학문적 열정으로 고독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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