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지난 9일 끝난 스웨덴 총선에서 지난 2014년을 뛰어넘는 비약적 발전을 거둔 스웨덴민주당(Sverigedemokraterna. 이하 SD)의 득표 결과를 보고 스웨덴은 깜짝 놀랐다.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스웨덴 주요 정당 중 3위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 2014년 49석의 의석을 얻은 것도 놀랄 노자였지만, 이번에는 62석이다. 2위 정당인 보수당(Moderaterna)의 70석과 불과 8석 차이다.

단순히 의석수가 늘어난 것만으로 SD가 의미되는 것은 아니다. SD의 62석은 스웨덴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됐다. SD를 배제하고는 스웨덴은 정부를 구성하기 어렵게 됐다. SD를 배제한 좌파와 우파 그 어떤 진영도 진영 연정으로는 의회의 과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스웨덴민주당의 홈페이지 첫 화면은 극우 정당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임미 오케손 자신이 모델로 등장해 친근감 있고, 다정한 친구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극우 정당이라고 부르는 데는 대부분 주저함이 없다. (사진 = SD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럼 도대체 SD는 어떤 정당이기에 2018년 스웨덴 총선 돌풍의 주역이 되었을까?

SD는 1988년 ‘스웨덴당’이라는 극우 정당이 이름을 바꾸며 탄생했다. 창당 당시 당 대표였던 안데르스 클라스트룀은 연설 때마다 ‘스웨덴의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SD를 민족주의 정당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SD는 스웨덴의 신나치주의자들과 스킨헤드족들이 중심이었다. 반이민과 반이슬람을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이민자들이 스웨덴을 갉아 먹는다”고 대중들을 선동했다.

두 번째 당 대표인 미카엘 얀손 때까지도 SD는 의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스웨덴 그 어디에서도 극우 정당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러던 2005년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우파 정치인은 달랐다. 26세에 SD의 당 대표가 돼 지금까지 13년 간 스웨덴 극우 정당을 이끌어온 임미 오케손(Jimmie Åkesson)이 그 주인공이다.

임미 오케손은 스웨덴 남부 스코네주 출신이다. 스코네주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그의 부모님들은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던 오케손은 10대 시절 보수당 청년 조직에 몸을 담았다. 토론과 세미나 등 지역 내 정당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16세 때 보수당을 버리고 SD로 당적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 오케손은 SD의 수장이 된 것이다.

오케손 역시 이전의 당 대표들처럼 ‘SD는 극우 정당이 아닌 민족주의 정당’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는 외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실제 당을 바꿨다. 당권을 잡자마자 당내 인종주의와 신나치주의자들을 축출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당내 지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대다수 당 지지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오케손이 이끄는 SD는 2006년 총선에서 비록 의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9%라는 유의미한 득표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D의 존재감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스웨덴 정가 한 구석에 조그만 자리를 차지한 ‘극우 정당 떨거지’일 뿐이었다.

오케손은 다시 4년 간 SD를 대중정당으로 바꿔갔다. 정강이나 정책 이념도 극우에서 조금 더 왼쪽으로 옮겨놓았다.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집권 우파 연정의 복지 축소와 이민 억제 정책은 SD의 활로를 넓혀줬다. 시민들의 우파 연정에 대한 실망은 SD에 대한 희망으로 바꾸어놓았고, 과실은 SD가 나눠 먹었다.

그리고 2010년 총선, 오케손은 마침내 SD를 스웨덴 의회 정당으로 만들었다. 5.7% 득표로 20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했다.

기존 정당들은 깜짝 놀랐다. 스킨헤드족과 인종주의자들이 스톡홀름과 예테보리 등에서 인종차별 극렬 시위나 벌인다고 비난과 야유를 하는 동안 자그마치 스무 명의 그들이 스웨덴 국회인 릭스다겐(Riksdagen)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스웨덴 최대 사회민주노동당(Socialdemokraterna)이나, 간신히 우파 연정 집권을 이어가게 된 보수당도 SD를 간과했다. 무시하고, 배제하고, 터부시했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SD 따위는 이내 곧 사라질 먼지처럼 여겼다.

 

▲ SD를 무시할 수 없는 3위 정당으로 만든 39세의 당수 임미 오케손. 그는 SD가 민족주의 정당이고, 스웨덴 시민의 친구임을 자처한다. 그는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됐다. (사진 = SD 홈페이지)

 

우파 연정이 실권하고 사민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연정이 집권하게 된 2014년 총선. 겉으로 보기에는 스웨덴 정가가 다시 진보 정권으로 바뀐 듯 보였다. 복지를 축소하고 이민을 억제했던 우파 연정이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오히려 SD는 12.9%를 득표해 의석수를 49석으로 늘렸다. 3배로 늘면서 원내 제3 당이 된 것이다.

상황은 심각해졌다. 더 이상 SD는 무시와 배제의 대상이 아니다. 오케손은 비록 35살의 나이지만 스웨덴 정가 그 어떤 정치인 못지않은 유의미한 존재가 됐다. 그런데도 사민당은, 보수당은, 그리고 다른 여타의 정당들은 SD를 여전히 무시하고 지저분한 병균쯤으로 생각했다. 총리이자 사민당 당수인 스테판 뢰벤은 “SD는 나치당”이라고 단언했고, 보수당도 “어떤 경우라도 SD와의 연정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SD는 체질도 바꾸고, 옷도 바꿔입어가며 스웨덴 시민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 결과 자신들을 배제하고는 정부 수립이 불가능해지는 지경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스웨덴 시민들은 사민당 등 여타 정당과 마찬가지로 SD를 신나치 인종주의 극우 정당으로 본다.

실제 오케손이 ‘우리는 신나치도, 인종주의자도 아닌 스웨덴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SD의 지방의회 후보들 중에서는 공공연하게 인종주의를 포방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반이민, 반난민, 반이슬람을 외쳤다. 그래서 분명 그들은 아직 극우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니, 본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들은 아직 분명 극우 정당이다.

스웨덴이 극우 정당을 품지 않고 정부를 구성하는 방법은 있다. 좌우 대연정으로 사민당과 보수당이 연정할 수도 있다. 과거 사민당은 중앙당(당시 농민당)과의 연정으로 정부를 구성한 적도 있다. 사민당+좌파당+환경당의 좌파 연정(144석)에 우파 정당 두어 개가 합세해도 되고, 반대로 보수당+중앙당+자유당+기독민주당의 우파 연정(143석)에 좌파이 함께 할 수도 있다.

주목되는 것은, 사민당이든 보수당이든, 스웨덴 정치가 어떻게 극우 정당의 정권 참여를 막을 것인 지다. 거기에 스웨덴은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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