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 박석무
  • 승인 2018.10.0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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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가을은 역시 좋은 계절입니다. 맑고 깨끗한 가을 공기,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어느 것 하나 우리 마음을 편안하고 상쾌하게 해주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유난히 덥고 짜증나던 여름을 보낸 뒤에 찾아온 가을이라선지 유독 금년 가을은 탓할 것 없이 좋기만 합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다산초당을 찾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회방송에서 시리즈로 방영하는 「길 위의 역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유배지에서 띄운 다산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다산에 대한 취재차 유배지를 찾아가 유적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취재진과 함께 다산초당을 찾아갔습니다. 더구나 금년은 『목민심서』가 저작된 지 200주년이고, 고행의 유배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200년이 되는 해여서 다른 때에 찾았던 초당과는 색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다산의 유배생활과 저작활동의 체취가 물씬 느껴지는 ‘다산초당’, 다산이 그곳을 떠난 지 200년이라니, 감회가 더 깊어졌습니다. “본디는 초당, 풀집으로 아랫마을 해남 윤 씨들의 별장과 같은 서당이었다. 다산은 1808년 그곳으로 이사와 살면서, 초당 서쪽에 서암을 지어 제자들의 거소로, 동쪽에 동암을 지어 자신의 숙소로 삼았다”라고 내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면서 경관을 꾸미고 사경(四景)을 이름 지었으니, 약천(藥泉)·다조(茶竈)·정석(丁石)·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을 조성하여 세상에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었다”라고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귤동 마을에서 초당까지의 ‘뿌리길’ 또한 상당히 힘든 길인데, 초당에서 유명한 학승(學僧)이 거주하던 백련사 절로 넘어가는 오솔길은 더욱 힘든 길이었습니다. 길섶에는 어린 차나무들이 아직도 새파랗게 자라고 있고, 또 그 길은 다산이 틈만 나면 학승 혜장선사(惠藏禪師)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그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괴롭고, 고향 생각, 처자식 생각, 흑산도의 형님 생각이 날 때마다 다산은 그 길을 걸으며 온갖 생각에 잠기기도 했지만, 경서(經書)와 경세서(經世書)를 연구하던 때에는 막힌 부분을 그 길을 걸으면서 얻어낸 사색으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오솔길, 200년 전 다산이 걷던 길을 200년 후에 후학의 한 사람으로 뚜벅뚜벅 걷는 그날의 감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 방법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혜장을 만난다는 기쁨, 그와 차를 마시고 시를 읊는 즐거움도 생각했겠지만 폐족의 신분으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아들들 생각에, 홀로 살아가는 아내의 생각에, 더 자신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흑산도 형님 생각에, 그의 가슴은 찢어지게 아픈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화해의 기쁜 소식도 듣고, 아름답고 청량한 가을 정취까지 느끼면서, 그래도 편하게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절이 가까워지자 푸르다가 검어져 버린 동백 숲을 지나면서 이런 아름다운 경치의 길을 걷게 해준 다산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경치도 좋고, 의미도 깊고, 온갖 사색이 가능하게 해주는 오솔길을 역시 다산 때문에 우리 후인들이 걸을 수 있는 행운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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