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1회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폭도로 몰아 수감됐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2년 5개월 만에 돌아왔고, 또 몇 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이명박 정권 당시 처음 구속됐을 때, 시민들은 그를 보면 피했다. 재소자들도 외면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그의 노동운동에 호응했다. 약자 편에서 투쟁했던 옥중의 그를 ‘위원장’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예우했다. 그리고 야만의 권력으로 노동자를 짓밟았던 이들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인터뷰는 3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한 전 위원장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지만 수감되기 이전 활활 타오르던 투쟁의 그것이 아닌 화합의 빛이 역력했다. 두 번의 수감생활은 시련이었지만,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우리사회의 문제를 더 깊게 관조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돼주었다. 출소 후 행보도 달라졌다. 얼마 전엔 룰라 대통령을 배출한 브라질노총(CUT)의 초청을 받아 그 나라의 노동문제와 정치적 상황 등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브라질 방문은 노동운동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브라질노동자당(PT)이 야당의 불법탄핵으로 정권을 내줬지만, 브라질 노동자들은 권력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확신에 차있었다. 어떤 대단한 노동자 단체 간부가 하는 말이 아니다. 용접노동자나 선반노동자, 청소노동자 등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꿈조차 못 꾸고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그는 한국 노동운동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동안 제도권 노동운동은 한계가 있었다. 진단은 했지만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화 하지 못했다. 그런 아픔을 끝내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을 찾겠노라고 감옥에서 내 자신에게 스스로 약속했다.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시민사회, 그리고 노동자 형제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한 발이라도 더 전진시킬 수 있다면 내 삶에서 더 이상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내년은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도 국제노동핵심협약조차 비준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준안을 내년까지는 결론짓겠다고 약속했다.

한 전 위원장은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은 채 스위스에서 열리는 100주년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국제회의장까지 따라가서 투쟁할 생각”이라며 “그곳에서 한국의 노동실태를 국제사회에 낱낱이 고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 노동자 단체들 간에 충분한 대화를 거쳐서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거의 3년 만에 시민사회로 돌아온 그로부터 우리사회 노동운동의 현실과 문제, 정부의 노동개혁·적폐청산·재벌개혁 문제, 향후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 등에 대해 폭넓게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근황이 어떤가.

▲ 막상 밖에 나오니까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여전히 만만치 않다. 지금도 노동자들이 정부청사와 청와대, 대한문, 국회 앞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바깥세상이 더 큰 감옥 같다. 비록 가석방으로 아직 형기를 다 채우지 못한 ‘담장 밖 죄수’지만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있을 뿐이다.

 

- 두 차례 수감됐었는데.

▲ 이명박 정권 시절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서다 3년, 박근혜 정권 시절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는 이유로 2년 6개월을 옥에 갇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쌍용차 정리해고자는 전원 복직됐고, 저를 가둔 이명박-박근혜는 오히려 감옥에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 상황 자체가 이전 두 정부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권력과 언론은 저를 철저하게 폭도로 매도했다. 사람들은 저를 보면 피해 다녔다. 감옥에서도 재소자들 사이에 폭도와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 역시 전교조 등을 반드시 응징해야 하는 적으로 여겼다. 공안탄압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얼마나 썩은 정권이었는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 만감이 교차할 듯한데.

▲ 노동자를 적으로 여기면서 정치를 제대로 한 권력자는 동서고금을 통해 한 명도 없다. 그 결과가 바로 제가 있던 감옥에 그들이 갇힌 이 상황 아니겠는가. 제가 두 번째로 감옥에 있을 때가 촛불혁명 시기였는데, 그때는 나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더라. 그동안 저를 폭도로 여겼던 사람들이 ‘아, 한상균은 폭도가 아니었구나’라고 하더라.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바뀌기까지 많은 굴곡과 사회적 파장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들의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바로 바뀐 세상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 촛불혁명 이후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 재소자들은 하나같이 땀 흘려 일하며 희망을 펼쳐갈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최저임금과 비정규직운동에 앞장 선 민주노총을 자신들 편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 열심히 투쟁해달라며 대놓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 전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혹시 말을 잘못하면 벌 받을까봐 말도 꺼내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대한 촛불시민혁명 이후 세상이 바뀌면서 그런 말문들이 열렸다.

 

- 교도관들도 노조결성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 국가공무원인 교도관들도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도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말한다. 교도관이나 군인, 경찰, 소방직은 공무원법에 묶여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노조를 못 만드나, 우리도 노동자이고 헌법에 노조 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왜 안 되는가’하면서 저에게 따지듯이 묻더라. 그래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 혼자가 아니라 당신들도 스스로 자기 삶을 바꿔내고 인간답게 노동을 하려면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 만들 준비를 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바꾼다고 공약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도록 밖에서 노력할 것이다’라고 하니까 서로 의기투합해서 힘내자고 하더라.

 

- 수감 중 처우는 어땠나.

▲ 저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하는 것은 없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처음으로 구속돼 소위 ‘폭도’로 몰려 들어갔을 때, 일반 재소자들과 접촉을 못하게 따로 격리시켰다. 방도 독방에다 운동도 혼자 하고 심지어 목욕도 혼자 해야 했다. 완벽하게 격리당한 케이스다. 사람이 좁은 방에 갇혀 있다 보면 심한 공포감이 올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치며 만나는 교도관이나 수감자들을 통해 감옥 안에서 또 다른 작은 세상의 민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안에도 나름대로 소통 방법들이 있다.

 

- 수감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제가 쌍용차 노조위원장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보니 많은 재소자들이 차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온다. 티볼리는 어떤가, 렉스턴은 어떠냐면서 쌍용차를 사고 싶은데 어떤 차를 사는 게 좋은가 하고 묻는다. 내가 영업사원도 아니고 쌍용차에서 해고된 사람인데, 속마음도 모르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안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들이 있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쌍용차를 사주라고 말했다.(웃음)

 

- 현 정부의 노동정책, 어떻게 평가하나.

▲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사회가 지금처럼 계급전쟁이 치열했던 적은 없었다고 잘라 말하고 싶다. 그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심지어 조·중·동을 포함한 보수언론들도 대놓고 계급전쟁이라고 쓰더라. 신문을 보고 우리들도 깜짝 놀랐다. 보수언론들이 이제 본심을 드러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계급전쟁에서 촛불정부는 과연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70년 이상 권력과 재벌들이 한편이 돼서 성장과 경쟁만을 추구해왔던 한국사회가, 이제 주변을 돌아보고 소득주도성장과 재벌개혁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을 맞고 있다. 하지만 본질로 들어가 보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알맹이가 없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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