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법 적용되지 않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 너무나 절박”
“국제노동법 적용되지 않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 너무나 절박”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10.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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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 얼마 전 브라질에 다녀왔다.

▲ 룰라 대통령을 배출한 브라질노총(CUT) 초청을 받아 그 나라의 노동자 문제와 정치적 상황 등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룰라가 속해있는 브라질노동자당(PT)은 지금 극우 야당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긴 상태다. 룰라 대통령은 두 번 집권을 했고, 이어서 후임인 호세프 대통령이 두 번의 임기 마지막 네 번째 재임 중에 부통령이던 테메르에 의해 탄핵됐다. 탄핵도 합법적 탄핵이 아니라 야당이 불법탄핵의 올가미를 씌웠다. 모든 복지비가 삭감되고 중지되면서 노동자와 서민경제가 매우 어려워졌다. 다시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 버렸다. 브라질도 그렇지만 남미국가 대부분이 경제와 정국이 혼미한 상태다.

 

- 브라질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인가.

▲ 브라질은 그동안 재정확대를 통한 복지확대 정책을 지속해왔다. 정부 기본노선이 예산확대에 집중돼왔다. 그러다보니 예산고갈로 이듬해 예산을 미리 앞당겨 쓰는 것이 관례화됐다. 브라질은 산유국인데 여기에 국제석유가격까지 폭락하면서 경제가 기울기 시작했다. 극빈층의 사회적 불만들이 증폭됐고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극우보수 세력들은 그런 국내외적 상황을 악용해 탄핵정국으로 몰아갔다. 결국 룰라정권을 몰락시켰다. 그러나 모든 게 불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브라질 노동자들은 하나로 결집돼 있다. 자신들 힘으로 만든 권력을 다시 세워야 노동자와 서민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 ‘피플 파워’가 느껴진다.

▲ 브라질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권력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확신에 차 있다. 그것은 어떤 대단한 노동자단체의 간부가 하는 말이 아니다. 용접노동자나 선반노동자, 청소노동자 등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아~ 우리는 아직도 그런 꿈조차 못 꾸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브라질 경제수준은 우리보다 뒤처져 있지만, 노동자들은 꿈과 이상을 잃지 않고 있다. 그들의 정신력에 대단히 놀랐다.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는가. 긴 세월동안 걸어온 우리의 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특별히 배운 게 있다면.

▲ 브라질 노동자들은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향되지 않았다. 노동문제를 한쪽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깊게 체험했다. 우리는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는 이름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 노동자만 560만 명에 달한다. 5인 이상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종 역시 그야말로 지옥이다. 이들에게도 노동조합 설립이 꿈이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그런 꿈조차 꿀 여유가 없었다. 이런 분들이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우리 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인 산재 예방과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정부에 요구함과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 국내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

▲ 이미 20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20년 전의 시간선상에서 그대로 멈춰 버렸다. 누구도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다. 세상은 이미 많이 변했다. 지금은 멈춰 있을 때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중지(衆智)를 모아 길을 찾아야 할 때다. 과감히 깨고 나갈 수 있는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때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알아서 해주지 못한다. 우리도 브라질 노동자들처럼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신노동운동’(New Labour Movement)을 말했다.

▲ 노동운동이라 해서 크게 새로울 건 없다. 앞서 말했지만, 수감생활하면서 느낀 바가 많다. 감옥은 나에게 어떤 면에서 학교였다. 그 안에서 남은 인생동안 노동자로서 이름 한번 남겨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을 외치고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너무 부러워서다. 그러면서 ‘그동안 나는 노동자가 아니고 노예였다는 말인가.’ 이런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고, 소위 노동자라 해도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법으로는 보장돼 있으나 허울뿐인 이런 상황 속에서 절망에 내몰린 노동자가 너무나 많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줄 새로운 노동운동을 생각하고 있다.

 

- 제도권 노동운동을 초월한 비장한 각오가 보인다.

▲ 과거 제도권 노동운동으로는 우리사회의 모든 아픔을 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점을 진단은 했지만,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방법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겠노라고 감옥에서 제 자신 스스로 수백 번 약속을 했다. 그렇다고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시민사회와 노동자 형제들과 함께 힘을 모을 것이다. 남은여생을 노동자로서 한 발짝이라도 전진시킬 수 있다면 제 삶에 있어서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을까.

 

- 내년은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노동운동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있다면 남김없이 해결하고 법적 문제가 되는 것은 투쟁을 통해 권리를 얻어내야 한다. 2019년이 ILO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국제노동핵심협약 비준도 하지 않은 노동후진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준안을 내년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스위스에서 열리는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다면, 국제회의장까지 따라 가서 투쟁할 생각이다. 그곳에서 한국의 노동실태를 국제사회에 낱낱이 고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까지 이르지 않으려면 정부와 국회, 노동자 단체들 간에 충분히 대화를 해서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 내년에는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 일단 ‘ILO 100주년’이라는 의미가 깊은 해다. 그러나 국제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너무나 절박하다. 외주공화국, 하청공화국, 비정규직 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부가 돈 한 푼 더 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임을 깨닫게 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 권리를 찾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 할 권리에 대한 완전한 보장이 실현되는 원년이 되는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300일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굴뚝농성 노동자, 1년 넘게 조명탑에서 농성하는 전주 택시노동자, 전교조 노동자, 서울교통공사 단식투쟁 노동자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들이 하루속히 일터로 돌아가서 땀 흘려 일하며 일상을 되찾기를 바란다.

 

-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시급한 과제다.

▲ 내년은 삼일절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00년 전 선열들이 자주독립을 외쳤던 뜻 깊은 해다. 그러나 현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헌정질서 유린과 노동탄압 등 온갖 시국사건과 연루돼 지금도 감옥에서 수감 중인 양심수들과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법적 피해자들이 많다. 정부는 이것들을 포괄적으로 모두 묶어서 한국사회 대통합을 위해 통 큰 대사면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온전하게 명예회복을 해줄 수 있는 길이다.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정부에 요구한다. 이 요구는 곧 민중의 요구이자 촛불혁명의 요구다. 무겁게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 마지막으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촛불혁명의 완수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촛불시민혁명이 과연 무엇을 원했는지 초심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에 대한 중단과 후퇴 없는 집행을 과감하게 해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것은 이미 정부의 의지와 무관한 사안이 됐다. 깨어있는 시민들과 스스로 주권자임을 선언한 국민들은 정부가 하고 안하고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시민들의 엄중한 시대적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정부를 어떻게 촛불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려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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