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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랑, 상처, 빛…

<오래된 영화 다시 보기> ‘토탈 이클립스’(1995년) 정다은 기자lpanda157@weeklyseoul.netl승인2018.10.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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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탈 이클립스> 포스터

굉장히 상반된 평을 듣는 영화들이 있다. ‘더럽다’ ‘최악이다’라는 반응과 ‘매력적이다’ ‘훌륭하다’라는 반응이다.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관점은 다르다. 모두가 다르게 살아왔기에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영화 리뷰를 보면 본인이 느낀 것과 다르다며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길 주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소개할 영화도 마찬가지. 그래서 더 호감이 생겼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느꼈다. 이 영화 속에 그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토탈 이클립스>(1995년 개봉)다.

19세기 프랑스의 시인으로 15세부터 19세 사이에 숱한 명작을 남긴 조숙한 천재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또 그의 동성 연인이자 19세기 프랑스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의 이야기를 담았다.

1871년 파리의 성공한 시인 베를렌느(데이비드 툴리스)는 아더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보낸 주옥같은 시 8편을 받는다. 베를렌느가 위대한 시인이라면 랭보는 가히 혁명적인 천재였다. 그가 16세에서 19세 사이에 남긴 시는 현대시의 면모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는다.

눈부시게 좋은 어느 날, 16세 소년의 존재는 천재만이 언어를 다룬다고 생각했던 베를렌느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미칠 듯한 사랑은 베를렌느의 부인 마틸드(로맨느 보랭제)를 비롯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받는다. 당시 동성애는 도덕적으로만이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죄악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이들의 관계는 언제 공격받을지도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브뤼셀로 여행을 떠나지만, 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랭보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이던 인간 자아에 대한 표현 대신에 진실을 찾아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있었고, 베를렌느는 시를 통한 삶의 위안을 갈구하고 있었다.

상충된 두 사람의 세계관은 급기야 랭보로 하여금 베를렌느에게 절교를 선언하게 한다. 이로 인해 흥분한 베를렌느는 랭보를 향해 총을 쏘고 이내 체포되어 2년간의 징역을 선고받는다. 출감한 그는 술에 찌든 채 사창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랭보의 누이 이자벨(도미니크 브랑크)을 만나게 된다. 랭보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다리에 병을 얻고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그의 출판 작업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여전히 진실을 찾고 있었지만, 질병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는 떨쳐버릴 수 없었다. 랭보가 썼던 문제작들이 베를렌느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자벨은 그에게 모든 작품을 없애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것들을 없앨 수 없었다. 랭보의 작품들은 그동안 베를렌느 자신을 지켜온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반응이 두 갈래로 나뉘는 건 아마 동성애란 자극적인 소재 때문일 것이다. 두 위대한 시인의 이야기를 미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들의 시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한다면 아마 충격을 금치 못할 것이다. 시인으로서 그들의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영화 <토탈 이클립스> 스틸컷

 

하지만 영화를 통해 두 인물을 처음 접해본 기자는 오히려 그들의 시에 관심이 생겼다. 영화는 단지 그들의 사랑 이야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베를렌느는 아마 그런 랭보의 모습에 더 끌렸을 것이다. 랭보는 보통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선을 넘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천재가 되기 위해 모든 걸 몸으로 경험하려한다. 온몸으로 사랑을 하고, 아파하고, 또 그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시를 썼다. 그리고 몇 번이고 떠난다. 빛을 찾아서. 반대로 베를렌느는 한없이 나약하다. 술, 이혼, 동성애, 빈곤, 병고 등에 휘둘리다 인생을 마감한다. 랭보가 인간 그 이상이 되려했다면 베를렌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갔다.

영화는 화려하지 못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적적하다. 단순히 퇴폐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두 배우의 연기 덕분이다. 한 네티즌은 말한다.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이 아니고 이 영화로 떴어야 한다.” <타이타닉>과 <토탈 이클립스>에서의 디카프리오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야망이 있고, 자유로운 어린 영혼. 다만 <타이타닉>에선 로맨스 영화라는 특성상 그의 잘생긴 외모에 연기력이 묻혔다면, <토탈 이클립스>에선 더 많은 감정선과 외모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냈다.

<비밀의 화원>, <올리비에 올리비에>, <카핑 베토벤>, <타오르는 불씨>, <스푸어> 등 유수의 세계적 영화제에서 수상 후보에 오르며 사랑을 받아온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새롭게 발견해낸 것은 물론 섬세하고도 박력 넘치는 연출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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