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갈매기는 작년과 같아도...


가을도 무르익어 깊어가건만 하전 갯마을은 쓸쓸하기만 하다. 작년만 해도 추석 즈음에 바지락을 캐러 들어가는 트랙터가 백여 대 이상 이백 대 가까이 복작거렸지만 금년에는 서른 대 남짓이 작업을 했을 뿐이고, 작년 이맘 때는 일본 수출용 냉동 탑차가 거의 매일 수십 대씩 줄지어 서 있었지만 금년에는 겨우 한두 대 정도가 외롭게 서 있을 뿐이다.

여름을 지나면서 바지락이 죄다 폐사를 해서 그런 것이라면 그나마 포기라도 얼른 해버리고 다른 살 길을 찾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보니 이야말로 사람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바지락이 없어서 못 캐는 것이 아니고, 수요가 없어서 못 캐는 것도 아니다. 작황으로 말하자면 금년 바지락은 풍년이었다. 작년에 종패 가격이 비싸서 적게 뿌린 것을 한탄해야 할 정도로 대풍이었다.

그러고 보면 금년 여름은 이상했다. 사람의 경험과 상식을 크게 뛰어넘는 여름이었다. 6월에 벌써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7월에는 갯벌에 자작자작 고인 물이 손으로 만질 수조차 없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여름이면 매년 트랙터에 한가득 지하수를 싣고 들어가서 바지락 양식장에 뿌리던 사람들도 금년에는 몇 번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헬기 같은 것으로 얼음조각을 실어다가 밤낮으로 뿌려 준다면이나 모를까, 트랙터로 싣고 다니는 지하수 몇천 리터 정도로 펄펄 끓는 갯물을 식힐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금년 바지락 농사는 쫄딱 망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바지락은 하나도 안 죽었다. 금년 같은 폭염이 아니라도, 예년에는 8월이면 여기저기서 냄새가 진동하고 죽어나자빠진 바지락 껍질이 흉물스럽게 뒹굴었건만 금년에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었다. 바지락은 폭염을 지나오면서 죽어간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씨알도 엄청 굵어져 있었다.

 

▲ 금방 잡아온 바지락

 

대충 견적을 내보자면 예년에 십여 톤 정도 캐내곤 했던 면적에서 금년에는 십삼 톤 이상 십오 톤까지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건 대박이다. 이게 대체 뭔 일이냐? 사람들은 의아하고, 어리둥절했지만 절로 터져 나오는 미소와 웃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자다가 로또에 당첨된 형국이었다. 물론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연례행사 중에 하나인 태풍이 남아 있었다.

태풍이 몰려올 때의 파도는 겉과 속, 그렇게 이중으로 치는데 겉파도는 패류 양식에 큰 해를 끼치지 않지만 속파도는 흙을 뒤집어놓기 때문에 바지락 정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도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런 무서운 태풍에 노출되지 않고 잘 넘어왔다. 금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태풍 ‘솔릭’이 서해안 어딘가로 상륙한다는 기상청 예보가 처음 나온 날부터 갯마을 사람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장 5박 6일 동안을 노심초사에 조마조마에 안절부절까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속담도 있건만 무슨 놈의 태풍이 시속 6킬로 내외의 느림보 거북이걸음을 걷고 있으니 애간장이 마르다 못해 타버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태풍 ‘솔릭’은 자신의 행선지마저 철저하게 비공개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중 삼중으로 죽여 놓았다. 처음에는 목포 어디로 상륙해서 동해로 빠질 거라더니 한나절도 안 돼서 태안반도 상륙 얘기가 나오고, 다시 몇 시간도 안 돼서 군산 얘기가 나오더니 다시 수정된 정보로 고창 얘기가 나오고 말았다.

태풍이 고창으로 상륙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순간 하전 갯마을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죽는 것밖에 없구나, 하고 다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도 태풍의 상륙 지점은 수시로 바뀌어서 부안 얘기가 나오고, 영광 얘기가 나오고, 다시 저 아래 목포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더 이상은 크게 바뀌지 않고 그 지점 어디에서 상륙 임박이라는 뉴스가 떴다.

 

▲ 걱정이 태산

 

밤이었다. 태풍은 밤에 육지로 들어와서 게릴라처럼 이런저런 각종 방식의 횡포를 부릴 모양이었다. 실제로 밤새 바람도 불기는 불었다. 아침에 밖으로 나가서 보면 아마도 피해가 상당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이 왔다. 달라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절로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태풍 ‘솔릭’은 그렇게도 사람들 가슴에 공포를 심어놓고, 장난꾸러기처럼 슬쩍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갯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지락 양식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태풍이 할퀴고 간 뒤의 갯벌은 멀리서 봐도 그냥 엉망진창이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가기는 가면서도 가기가 싫어져서 외면한 채 한숨만 푹푹 내쉰다. 그런데 이번에는 멀리서 한눈에 척 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이야, 이게 무슨 하느님이 보우하사냐, 응?”

한두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외쳤다. 유사 이래 이런 일은 없었다. 겨울 찬바람에 얼어서 죽거나, 여름 무더위에 삶아지거나, 태풍에 날아가 버리거나, 최소한 한 가지 정도의 자연재해는 있어 왔었다. 금년처럼 이렇게도 그 모든 자연재해를 일일이 다 비켜간 예는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갯마을 사람들에게 자연재해는 천형과도 같다. 비싼 돈 주고 종패를 사다가 뿌리면서도 그것들이 온전하게 다 자라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절반만, 아니 반에 반만이라도 건질 수만 있다면 굶어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짓’을 하고, 또 하고 되풀이한다. 영악한 사람이라면 이런 숨 막히는 짓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차라리 ‘노가다’를 하겠다고 떠나지만, 그래도 ‘그짓’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그짓’을 한다. 그렇다고 희망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씩 했다고 소문나 있는 대박에의 꿈이 있는 것이다.

 

▲ 출근이 즐겁지가 않아

 

그렇다. 대박, 그것이 있었다. 가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한두 사람씩 초대박을 치는 사람이 나오곤 했다. 종패 십 톤을 뿌려서 십 톤을 캐면 돈 좀 벌었다 하고, 이십 톤을 캐면 대박을 쳤다 하고, 삼십 톤을 캐면 초대박이라 해서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그 사람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된다.

“아 그때 그 사람 완전히 떠먹었잖여.”여기서 떠먹었다는 말은 생각지도 않은 대박을 쳤다는 뜻이다. 어느 특정한 사람만 떠먹는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떠먹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기대가, 그런 희망이 없다면 생명조차 걸어야 하는 갯일에 묵묵히 청춘을 걸고 인생마저 걸지는 못할 것이다.

금년에는 누구 한 사람 예외가 없이 다들 그렇게 초대박 아니면 대박이요 최소한 돈 좀 벌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걸로 알았다. 그 무시무시한 폭염에도 바지락은 의연하게 꿋꿋하게 잘 자라주었고, 태풍도 곱게 피해가 주었으니,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갯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신명나게 축제라도 벌이게 되는 줄 알았다.

“오매, 뭇이 요렇게도 지금거린다냐?”

이제 바지락을 캘 때가 됐다 싶어 한 양푼씩을 캐다가 삶았는데, 바지락이 이상했다. 국물은 예년보다 훨씬 시원하게 구수했고, 그 부드러운 알맹이 속살도 통통하게 먹음직스러웠지만, 이에 씹히는 느낌이 이상했다. 평균치의 바지락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무슨 조개껍질 같은 것이 씹히는 것이었다.

“집이 치는 으찌여?”

“집이 치도 그리여?”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서로 물어보았다. 우리 바지락은 이상한 것이 생겼다. 너희 것은 어떻더냐. 우리 것도 이상한 것이 생겼다. 큰일났다.

 

▲ 최고의 기술자

 

조사 결과 그것은 어류의 알로 추정되었다. 무슨 어류인지는 추정하기 어려웠다. 크기는 명란젓갈을 구성하는 무수하게 많은 알갱이보다 작았고, 색깔은 투명해서 육안으로는 잘 식별도 안 되었다. 독성은 없었고, 인체에 무슨 해를 끼치지는 않는 걸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씹을 때의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해감을 하면 일부가 빠져 나가기는 하지만 이삼십 퍼센트는 남았다. 그러니까 바지락 칼국수를 해서 먹으면 서너 마리당 한 번꼴로 지금거리는 그것이 씹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간 상인들은 거래를 끊거나 보류했고, 일본 수출은 완전히 막히고 말았다.

궁하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갯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굶어죽을 수는 없다 해서 바지락을 까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바지락 젓갈은 인기가 제법 좋아서 까는 것만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고, 없어서 못 팔아먹는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쪼그려 앉아서 하는 그 일이 힘들어서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는 바지락을 직접 까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바지락 까기에 나섰다.

바지락을 깠다 해서 그 이상한 알갱이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소금을 녹인 맑은 물에 헹굼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예전에도 바지락을 까다 보면 껍질이 부서지면서 속살과 섞이기 때문에 두세 번 정도 헹궈야만 했었다. 그런데 그 알갱이는 두세 번 정도의 헹굼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적어도 일고여덟 번 정도는 헹궈내야 비로소 그 알갱이가 사라졌다.

헹굼을 여러 번 하다 보니 품은 품대로 들고, 양은 양대로 줄어드는 이중 삼중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섯 번쯤 행구고 나서 다 됐나 하고 맛을 보고, 다시 또 두어 번 헹구고 나서 또 맛을 봐야만 하니, 한 사람이 하루에도 몇백 마리의 바지락을 먹어치우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인 것이었다.

 

▲ 까고 또 까고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세월이 한 달이나 곱게 지나갔다. 주문을 보류했던 중간상인들은 그래도 하전 바지락이라면서 조금씩 주문을 재개하기 시작했고, 꽉 막혔던 일본 수출도 예년 대비 십 퍼센트 정도는 다시 열리기 시작했지만, 하전 마을 앞 갯벌을 꽉 채우고 있는 바지락에 비하자면 어림 턱도 없는 일이었다. 10월이면 작년에 뿌린 바지락을 얼추 다 캐내고 새로운 종패를 준비해야 할 때인데 이를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우리는 인제 오갈부자 될 일만 남었응게.”

“뭔 소리여?”

“아 바지락에 진주가 생겼잖어. 그것들이 인제 커서 진주목걸이가 될 판인디 말이여. 너도 나도 다들 부자가 안 되고 으쩔 것이냔 말이제.”

어느 하루 마을 슈퍼에 몇 사람이 모여 그런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작은 시시껄렁했지만, 사람들은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시시껄렁한 대화를 가슴에 담아갔다. 그리하여 바지락 속에 들어 있는 그 알갱이는 이제 진주가 되었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정말로 성장을 해서 무엇인가 그럴 듯한 구슬이라도 될지.

그나저나 이것은 대체 무슨 현상인 것일까? 일종의 돌연변이? 아니면 그냥 단순한 일시적인 현상? 그것도 아니면 해수 온도의 상승에 부응하는 진화의 한 과정?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하면 뭔가 실마리라도 잡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을 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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