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내년 12월 10일을 기다린다”
“아쉽지만, 내년 12월 10일을 기다린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10.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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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었죠. 결과가 발표된 후 ‘그래, 아직은 아니고 내년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지난 5일 오전 11시 꽤 많은, 아니 어지간한 스웨덴의 한국 교민들은 공영 TV 방송인 SVT에 눈을 고정시켰다. 옆 나라인 노르웨이 오슬로로부터 생중계되는 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본 것이다. 발표자로부터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불릴까 하는 기대를 안고.

하지만 결국 그 발표자의 입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데니스 무퀘게와 이라크의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의 이름이 불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도 불리지 않았다. 그렇게 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는 스웨덴의 한국 교민들에게는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꽤 실망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발표가 있은 날 저녁 스톡홀름 시내의 한국 식당에 삼삼오오 모인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구원으로 스톡홀름 대학교에 근무하는 김모 씨는 “그래도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가뜩이나 노벨상 주간 첫 날 일본 사람이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있었기 때문에 더 했다. 연구 업적으로 받을 수 있는 노벨상은 아직 요원해도 평화상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 않나 해서였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 지난 5일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내년엔 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웨덴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한 대기업의 주재원은 “스웨덴의 동료들과 내기를 했었다. 김정은과 공동 수상할까, 트럼프와 공동 수상할까? 하고. 문 대통령이 받을 것을 전제로. 아마 김정은이나 트럼프 때문에 문 대통령도 받지 못한 것 같다”며 살짝 다른 이를 원망하는 말을 했다.

이들이 이렇게 한껏 기대하다가 실망한데는 미국과 영국의 도박사들 탓이 크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날 미국과 영국의 도박업체에서는 일제히 문 대통령의 수상 가능성을 가장 높게 쳤다. 미국의 한 도박업체에서는 문 대통령을 수상 가능성 1위로, 메르켈 독일 총리를 2위로,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을 3위로 꼽았다.

‘노벨상 족집게’라고도 불린다는 영국의 한 도박 사이트에서도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공동 수상을 1위로 꼽았다. 트럼프는 오히려 5위에 머물렀다. 실제 수상자인 무퀘게나 나디아는 아예 유효 순위에서 이름을 찾을 수도 없었다.

이런 뉴스는 물론 한국에서만 보도됐다. 정작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는 그런 도박업체의 예견 보도는 다뤄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영국의 언론에서도 섣부른 그런 보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일부 황색 언론에서나 좀 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도박업체의 예견을 다루는 정도였다.

 

▲ 5일 오전 11시 스웨덴 공영TV인 SVT 화면에 쏠린 눈길들이 많았다.

 

주로 한국의 언론보도를 보고 문 대통령의 수상을 잔뜩 기대했던 한국 교민들은 수상자 발표가 시작되고 채 20초도 지나지 않아 채널을 돌리거나 TV 앞을 떠났다.

하지만 그 날과 다음 날인 주말 저녁 노벨평화상과 문 대통령의 이야기는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됐다. 그리고 전문가 버금가는 수준의 분석들이 이뤄졌다. 노벨평화상 수상 실패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스톡홀름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모 씨는 “북한 정권의 반인권적인 상황과 트럼프의 부도덕함 때문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문 대통령에게까지 상을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 선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만 노벨상을 받는다면 김정은과 트럼프가 판을 엎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노벨위원회 사람들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시점이 너무 지나간 것이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2018년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마감은 지난 1월 31일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후보에 추가된 것은 지난 9월로 알려졌다.(후보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않는 관례상 추정이기는 하다.) 그러니 문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인 심사의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교민들은 “내년에 받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정전 선언이 완벽하게 이뤄진 후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로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이 누가 봐도 공정하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저어한 웁살라의 한 한국인 정치사회학자는 “만약 올해 노벨평화상을 문 대통령에게 주었는데, 혹이라도 북․미 정상회담이 어그러져서 한반도의 비핵화도, 정전 선언도 이뤄지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문 대통령의 수상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건 아주 불편한 상황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끌어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고, 또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끈 것도 평가받을 일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변수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 남북이 만난 것으로는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북․미 정상이 만났다는 것만으로 문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한국 교민들은 물론, 스웨덴 시민들도 내년 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기대는 높다.

스웨덴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빌덴 빅스트룀 박사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문 대통령을 놓고 김정은 트럼프 때문에 고민한 것은 확실하다”며 “하지만 올해 안에 한반도의 완벽한 비핵화와 종전 선언이 이뤄지고, 한반도의 평화가 현실이 된다면 제 아무리 김정은과 트럼프가 걸린다고 해도 문 대통령에게 내년 노벨평화상은 팔을 벌릴 것이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한국 교민들은 2019년,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60주년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만찬을 하는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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