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인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은 학자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학자 한 사람은 정승 세 사람을 감당한다면서 학자 한 사람이 있는 집안은 정승 셋을 배출한 집안보다 더 우대한다고 했습니다. 학문에 버금가는 일은 행실입니다. 독실한 행실이 있는 사람 또한 학자처럼 우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민심서』에서 다산은 말했습니다.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행실을 돈독하게 닦는 선비가 있으면 마땅히 몸소 그를 방문하고 명절에도 문안을 살펴 예(禮)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部內 有經行篤修之士 宜躬駕以訪之 時節存問 以修禮意:「擧賢」)”라고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말했습니다.  

다산은 이런 학자와 선비 우대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이나 근기(近畿)지역에야 명사들이 너무 많아 모두에게 우대하고 존문(尊問)하기야 어렵지만, 먼 시골 지방에서는 귀한 사람이나 어진 이에 대하여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하고, 평소에 친분이 없던 사람이라도 찾아보며 명절에는 술과 고기를 보내는 일을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오두막집의 궁한 선비라 하더라도 학행을 스스로 닦아 명성이 고을에 자자한 사람에게는 마땅히 몸소 방문하여 싸리로 만든 사립문이 빛나게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는 일이 바로 백성들에게 착한 일을 하면 대접받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니, 그런 일이 ‘백성들에게 선을 권하는 일’(勸善于民)이라면서 목민관은 의당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다산 정약용

학문이 깊은 학자나 만인의 모범이 되는 행실을 하는 선비는 무시당한 지 오래입니다. 오직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이 높은 사람만이 대접받고 귀한 사람으로 여기는 오늘의 세상에서 다산의 말씀은 역시 의미 깊게 새겨야 할 내용입니다. 

고대의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은(殷)의 유신(遺臣)으로, 상용(商容)이라는 사람이 학문과 덕이 높았는데 무왕은 그가 사는 마을을 지나면서 집을 방문하여 경의를 표한 바 있습니다. 후한(後漢)의 진중거((陳仲擧)라는 높은 벼슬아치는 고을의 태수(太守)가 되어 고을에 부임하자 집무실에는 들르지도 않고 그 지방에 숨어 살던 고사(高士)의 이름을 듣고 직접 집으로 방문하는 일부터 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서유자(徐孺子)인데, 주변 사람들이 먼저 집무실에 들른 뒤에 방문해야 한다고 했으나, 진중거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곧장 서유자를 방문하면서, 무왕도 상용(商容)을 먼저 방문했는데, “내가 어진 이에게 예를 다함이 무슨 잘못인가(吾之禮賢 有何不可)”라고 말하며 서유자를 직접 방문하여 경의를 표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왕이나 진중거 같은 현명한 군주나 고관들은 역시 하는 행동이 달랐습니다. 비록 권력에서 멀리 있고 돈에서도 무관하게 살아가는 어진이라면 ‘현현(賢賢)’의 도리, 어진 이는 반드시 어진 이로 대접해야 한다는 성현의 뜻에 따라 그런 일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고관대작이나 목민관들, 자기만이 가장 어질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숨어사는 어진 이들을 예우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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