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 그녀의 슬픈 눈꼬리를 닮았다
그녀의 시, 그녀의 슬픈 눈꼬리를 닮았다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8.10.08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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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진수의 '요즘 시 읽기'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젖은 알몸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허수경, <불우한 악기>, 《혼자 가는 먼 집》

 

급하게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원래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러려고 연재를 시작한 것이 아닌데. 그러나 그래야만 한다. 내가 이 경솔한 원고를 쓰는 이유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서 비롯된다. 태풍이 오기 바로 직전 점점 날이 추워지던 가을, 허수경 시인이 머나먼 독일 땅에서 숨을 거뒀다. 그리고 한국 땅에는 서러운 비와 바람이 들이닥쳤다. 이토록 매정한 계절, 나는 그녀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알고 있다고 그녀를 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녀를 알아가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의 시를 읽어야 한다. 우리는 그녀의 시를 읽고 그녀를 기억해야 한다. 멀고 먼 나라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된 그녀를, 깊이 사랑하며 간직해야만 한다.

 

▲ 사진=pixabay.com

 

한참 동안 그녀의 시집들을 뒤적거렸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 대해 말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고심 끝에 고른 위의 시는 그녀가 낸 첫 시집에 실린 시다. 허수경 시인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새 전형적인 작품이 되어버리기도 한 이 시는 ‘요즘’ 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요즘의 나는 이 시를 통해 허수경 시인을 가장 자주 향수한다. 허수경만의 독특한 냄새가 배여 있다. 향기가 아니라 구수하고 익숙한 냄새다. 섬세하면서도 뭉툭하고, 고우면서도 주름이 자글자글 배였다. 친숙하고 따뜻한 시선은 허수경 시인만의 출발점이다. 누구도 이를 쉽게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시선은 익숙한 풍경과 감정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그녀가 고민한 흔적들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감히 허수경이 첫 시집을 낼 때부터 품어온 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녀가 깊이 잠들기 직전까지 오직 혼자서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려했던 고집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이 오만 방자한 사람이 허수경을 통해 읽은 것은 대강 이렇다.

눈물 모양으로 처진 시인의 눈꼬리를 보라. 사실 허수경의 세계는 너무나도 확고하고 분명해서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만한 역량이 내겐 없다. 만물에게서 슬픔을 담아 노래할 수 있는 그녀의 왜소한 자신감은 시를 읽는 사람들의 눈꼬리 역시 깊게 처지게끔 만든다. 나는 그것을 동정심 따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세계 속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이란 동정심보다는 더 섬세하고 숭고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무언가를 바라보더라도 그것에 안타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내부를 꿰뚫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동정심으로 치부하기에는 훨씬 날카롭게 다져진 그녀의 문장들을 시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터미널이라는 익숙한 장소, 남녀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대상들, 그리고 지겹도록 우리가 잘 아는 일상들은 그녀의 세계에 입장하는 순간 그 수많은 수식어들의 무장을 벗는다. 그리고 오직 터미널, 남녀, 일상이라는 단어들로만 남게 된다. 결국 사람과 물건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씨가 아니라, 시인은 그것들의 솔직함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시인의 세계 역시 우리가 그토록 당연하게 살아가는 세계와 일치하지 않고, 현실로부터 주어지는 과제들로 그 구성을 꾸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시를 쓰기 시작한 현실에서부터 자신이 갖는 사명감으로 괴로워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는 그 세계를 숙명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숙명의 세계라는 말로 허수경 시인을 설명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그 세계는 여느 어떤 시인의 세계관보다도 묵직하기 때문이다. 숙명이라는 단어 자체를 우리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다시 시를 들여다보라. 시인이 바라보는 모든 일상 속에서 불우를 읽어내는 그 불우한 시선을 들여다보라. 그것이 숙명을 연상시킨다. 허수경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슬픔으로부터 시를 써왔는지, 그리고 그 슬픔이 감정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라는 존재 의식을 채우는 물질로서의 역할 역시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허수경의 불우는 동정되어야 할 것을 넘어서서 노래되고 향유된다. 불우한 삶을 우리 모두가 나눠 짊어야 할 것만 같다. 숙명의 세계에서 시인이 그토록 말하고자 했던 사명이 바로 그것이며, 결국 시인 스스로 평생의 과제로 짊어 매 살아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허수경의 생애를 추측해보고 싶다.

떠나가는 시인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드디어 그녀가 숙명의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드디어 그 무거운 사명과 과제를 내려놓아도 된다. 그러니 그녀의 섬세하고 여린 마음씨가 가볍게 하늘을 날아오르길 기도한다. 새이든 희망이든 그녀가 멀리서 바라보았던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기를. 날이 점점 차다. 시인은 감기 조심하고 먼 길 잘 가시길. 숙명의 끈이 끊어졌으니, 이제 그녀가 남긴 시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노래하고 그녀는 우리가 꿈꿀 수 없는 세계를 노래할 것이다. 사람 허수경의 행운을 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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