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자전거 타기, 버스와 충돌, 그리고 상처
도둑 자전거 타기, 버스와 충돌, 그리고 상처
  • 김덕희
  • 승인 2018.10.1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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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면사무소 앞에서의 자전거 타기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나중엔 자장면집에서 배달을 하는 친구까지 와서 거들어주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맨날 면사무소 앞 공터만을 빙빙 돌다보니 좀더 넓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은 생각만으로 그쳐선 현실이 될 수 없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여태까지 자전거를 탄 것도 그런 용기 덕분이 아니었겠는가. 내 자전거 없이 매일 남의 자전거를 가지고 연습을 했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한 대 골랐다. 면사무소 앞 공터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바로 길거리로 나섰다. 약간 경사가 진 언덕길을 손쉽게 내려왔다. 좀 더 큰 길이 나를 기다렸다. 이곳부턴 이제 본격적인 죽산읍내가 시작되는 것이다. 키도 작고, 어린 아이가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읍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뿐, 누구 하나 내가 면사무소에서 훔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입에서 콧노래가 나왔다. 가끔 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 자전거를 비켜 지나갔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난 여유 있게 자전거를 몰았다. 어느듯 자전거는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신작로가 펼쳐지고 있었다. 달렸다. 신작로 양 옆으론 논과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어느덧 자전거는 죽산읍에서 백암쪽 갈래길에 이르고 있었다. 커브길이었다. 자전거 손잡이를 한껏 돌렸다.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때마침 반대편에선 버스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자전거는 미끄러졌고 버스는 자전거를 치고 말았다. 눈 속으로 파고드는 흙먼지가 원인이었다. 자전거 속도가 빨랐던 것도 물론 큰 원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내 몸이 자전거를 벗어났다. 튕겨나갔다.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자갈이 얼굴과 온 몸에 상처를 냈다. 옷은 찢어졌다. 무릎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 너무나 아팠다. 이것저것 사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난 그냥 길바닥에 드러누운 채 엉엉 울고 말았다.

 

▲ 사진=pixabay.com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바로 자전거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쪽 저쪽 자전거가 있을 만한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찌그러진 채 신작로 옆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하늘을 향해 들려진 앞바퀴는 마치 8자를 연상시킬 만큼 찌그러져 있었다. 지금쯤 면사무소에 들어갔던 자전거 주인은 자전거를 찾느라 한참을 헤매고 있을 터인데…. 재빨리 자전거를 갖다 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자전거를 찌그러져 버렸고 길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다리가 너무 아파 잘 펴지지가 않았다.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려고 윗옷을 벗어 무릎에 칭칭 감았다. 버스는 이미 저만큼 사라지고 있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나와 부딪친걸 알고도 뺑소니를 친 것인지, 아니면 몰랐던 것인지….

한참 후에야 난 간신히 일어나 절룩거리며 죽산 읍내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논 바닥에 처박혀 있는 자전거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몸까지 이렇게 다쳤으니. 다리를 절룩이며 간신히 간신힌 한 걸음씩을 떼었다.

간신히 죽산읍내에 도착했다. 병원에 가봐야 할 일이었으나 뒤가 두려웠다. 부셔진 자전거가 걸려 그저 빨리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게다가 죽산읍내에서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 내가 자전거를 타는 걸 봤을 수도 있을 터였다. 갈 곳은 이발소 뿐이었다. 다행히 이발소는 쉬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빨간 머큐롬과 소독약 등이 있었다. 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그리곤 하루종일 바깥 동정만 살피다 해가 떨어지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밤새 끙끙 앓아야 했다. 상처의 통증 때문이었다.

그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찢어진 무릎상처를 실로 꿰매고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그때 난 상처로 인해 아주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그 때 상처가 약 10cm 정도 흉터로 자리잡고 있는 상태다. 다행히 자전거 주인에게 걸리지는 않았다. 매일 불안한 나날들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내 뇌리에서도 잊혀졌고, 다행히 내 소행이란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후 휴일날 다시는 면사무소 앞에 가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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