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화 지음/ 글항아리

전염병은 인류 사회에 큰 상처를 입혀왔다. 14세기부터 대유행한 흑사병(페스트)은 유럽 인구의 30~40퍼센트를 잡아먹고서야 진정되었다. 20세기 초엽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불과 2년 만에 전 세계에서 2500~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니 전쟁보다 무서운 게 전염병이란 말이 나온다. 현대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광경을 미디어를 통해 지켜보며 "언젠가는 저 가축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불과 한 달 전 쿠웨이트를 다녀온 60대 남성이 메르스 양성 반응을 보여 온 미디어가 들썩였다. 병원체를 통제해야 할 관련자들은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괴로웠으리라. 미생물은 과학이 발전한 요즘에도 이렇듯 진화하고 또 진화하여 인간을 위협한다. 아직 그 위협의 정도가 우리가 실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전염병은 문학과 예술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전염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장티푸스(장질부사)는 우리 근대 문학 속 가난한 자들의 삶의 끝자락과 함께하는 질병으로 자주 등장한다. 2000년 『영혼의 산』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젠은 문학이 "인간 곤경의 기록"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인간의 가장 비참한 때와 함께하는 감염병은 인간 곤경의 양상에 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곤 한다.

'감염된 독서: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아주대병원 최영화 교수가 쓴 독특한 책이다. 에세이면서 서평 모음집이기도 하고 질병, 특히 감염병과 관련된 책만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이색적이다. 저자는 국내 에이즈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잠시 저자에 대해 설명하자면 감염내과 의사로서 사스 의심 환자를 진료했고(2003), 그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아주대 의과대 졸업생들이 선정해서 주는 "황금분필상"(2010, 2014)을 받은 성실한 선생이기도 하다. 또한 간이식 환자의 이식 후 균혈증과 관련한 논문으로 대한감염학회 학술상(2013)을 받았으며 2015년 메르스 유행 때 즉각대응팀 일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주대학교 총장상(2015)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이러한 현장 전문의가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부제 아래 감염병과 관련된 책들을 한자리에 집합시켰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급성출혈결막염이 연결되고, '닥터 지바고'와 발진티푸스가 연결되는 식이다. '데카메론'은 페스트, '나는 걷는다'는 아메바 이질, '이 인간이 정말'과는 O157 대장균으로 이어지는 목록을 보면 감염병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저자는 이 책들에 등장하는 관련 대목을 인용하면서 전문 지식으로 더 풍부하게 그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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