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제멋대로 코스모스


사건의 발단은 반지였다. 뭐 그리 대단한 반지도 아니었다. 손가락에 그냥 막 끼면 되는, 보석도 무엇도 없는 단순한 금반지 하나일 뿐이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금반지라도 하나 사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날 아침에 했었더란다.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아내의 생일을 챙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뭔가가 애잔해서, 그래서 금반지라도 하나 끼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아내의 손가락을 본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 무슨 삼마트인가 어딘가에서 계산원 일을 하는 딸내미가 엄마 생일이라고 보내온 선물을 직접 받아보고서야 아내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딸내미가 선물을 했으니 남편도 뭐든 하나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금반지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읍내의 금은방 전문점을 찾았다. 그리고 알았다. 따로 특별히 주문 제작을 하지 않는 한 이 세상 어디에도 아내의 손가락에 들어갈 만한 반지는 없다는 것을.

“와아따 야 이, 대다하네요. 아니 대관절 뭔 일을 하시길래?”

금은방 주인의 놀라워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남편은 아내의 손을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가락을 보았다. 믿기지 않았다. 저게 사람의 손가락이란 말인가? 손가락 마디가 마치 진흙탕에서 넘어진 당나귀 무릎뼈 같았다. 어머니가 아내를 심하게 부려먹는다는 정도는 눈치로 감을 잡고 있었고, 오다가다 들리는 얘기를 들어서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망가뜨려놓고 있었을 줄이야.

남편은 우선 자존심이 상했다. 금은방 주인이 초면이라면 자존심이 상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난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난사랑’ 동호회 회원인 까닭에 부끄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불문곡직하고 어머니에게 선언했다.

“우리 인제 나가서 살라요.”

 

▲ 가을모과

 

서울의 형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독립을 선언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누나들에게도 역시 전화로 독립을 알렸다. 형들과 누나들은 크게 놀라서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의연하게 한 마디 하고는 당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이구, 나간다고 하믄 내가 뭐, 잡을 줄 알고, 그래라. 나가라.”

할머니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 그리고 손녀를 모두 포기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며느리 없이는 김치 하나도 담가 먹을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손도 대보지 않았던 밥 짓는 일이며 빨래며 청소 등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깔끔하고 능숙하게 처리해낼 자신도 사실은 없었다.

어쨌든 막내아들 내외는 말로만이 아니라 사실로 읍내에 전셋집을 얻어서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빈말로나마 그동안 미안했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면 그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았겠지만, 어머니가 오히려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하는 바에야 이제는 안 나갈 수도 없게 되고 만 셈이었다.

그들이 분가를 하던 날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축하해주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딸의 이름이 연이라서 연이네로 통하는 할머니의 막내며느리를 축하해주었다. 연이네는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바보’ ‘등신’ ‘천치’ ‘머저리’ 등등 온갖 부정적인 별명으로 불려 왔었다. 시어머니가 시키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단 한 마디도 이의제기를 못 하고 묵묵히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다 해치우고 있었기에 붙은 별명이었다.

누구 한 사람도 할머니를 동정하지 않았다. 동정은커녕,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내기를 걸기 시작했다. 아들 둘에 딸 둘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그 중에 한 자식이라도 어머니를 모셔 간다거나, 함께 살겠다고 내려온다면 끓는 물에 자기 손가락을 넣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 모두에게 금반지 한 돈씩을 선물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 가을에 핀 벌개미취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내기를 걸어놓고 할머니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서도 모르는 채로,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막내아들 내외를 험담하기 바빴다. 막내아들 내외가 효자 효부라서 할머니 당신과 함께 살아준 것이 아니라, 남편이 죽은 뒤로 꾸준히 늘려온 재산을 독차지할 욕심으로 그동안 붙어 있었던 것이라고, 그런데 금방 죽을 줄 알았던 할머니 자신이 얼른 안 죽어주니까, 아들 내외가 그만 실망해서 집을 나가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돈, 그 징글징글한 돈이 할머니를 통째로 사로잡고 있었다. 그 세월이 무려 오십 년이었다. 서른다섯 그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뒤로 할머니는 팔십이 넘은 오늘날까지 아파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플 틈이 없는 까닭에 아플 수가 없었다. 감기 몸살 같은 것으로 잠시 드러누웠다가도 이럴 때가 아니다, 하고 벌떡 일어나서 일감을 손에 잡으면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신기한 체질을 할머니는 타고나 있었다.

처음에는 아마 삼남 이녀,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남편도 없이 제대로 잘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일에 파묻혀 살았을 것이다. 나중에는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 까닭에 며느리가 먹는 밥도 아까울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먹는 밥도 아까운데 그런 며느리를 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벌어서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목적이 분명할 때는 옆에 다른 사람의 사정도 제법 헤아릴 수 있지만, 돈 자체가 목적이 돼버리면 다른 사람의 사정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는 식의 괴물이 되어가기 마련이었다.

사실 할머니는 막내아들 내외가 들어와서 함께 산다고 했을 때 이미 떨떠름해 했었다. 자식들이 객지로 다 나가고 난 뒤부터 할머니는 배가 고프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방식으로 대충 얻어먹고 살았다. 막내아들 내외가 느닷없이 내려와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을 때 하나도 안 반가운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돈 한푼 안 들이고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데 자식 내외가 와서 함께 산다고 하니 이제 더 이상은 남의 집 밥을 얻어먹고 다닐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막내아들은 형이나 누나들과는 달리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고향에 대한 애착 또한 형들이나 누나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높았다. 식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고향 사랑이 결국 그의 직업이 되었다. 농업관련 기관에 일자리를 얻은 그는 마침내 도시를 떠나 고향 집으로 들어갔다.

 

▲ 대추말리기

 

할머니는 일손이 하나 생겼으니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막내아들은 식물에 대한 관심은 깊어도 농사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산으로 들로, 섬으로 어디로 며칠씩 쏘다니며 희귀한 식물을 찾아내서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할머니는 그런 막내아들을 차츰 건달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잠시라도 틈이 나면 일손을 거들어야지, 틈만 나면 어디로 나가서 며칠씩 있다가 돌아오는 사내라면 필경 제 마누라가 마음에 안 들어서 어디에 딴 여자를 두고 있으려니 여겼다. 그런 건달은 건달이라서 어떻게 해볼 수 없다 해도, 며느리는 보기 드물게 순종적이어서 할머니가 만만하게 보고 부려먹기에 딱 좋았다.

이 세상에 농사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으로, 직접 해본 적이 없는 연이네는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채로 얼떨결에 그냥 농사꾼이 되어갔다.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었다. 그것도 못 하느냐, 그것밖에 못 하느냐, 등등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 번씩 날아오는 시어머니의 앙칼진 고함소리에 연이네는 점점 기가 죽어갔고, 자존심도 상해갔다.

자존심이 상한 연이네는 시어머니의 지청구를 가능한 한 안 듣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했고, 되도록이면 시어머니의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 그 방법에 대해서도 나름 연구를 했다. 말이 좋아 연구일 뿐으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시어머니가 시키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네, 하고 명랑하게 대답하고 깔끔하게 처리해 내는 것, 그렇게 그녀는 시어머니의,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갔다.

낮에는 들에서 새가 빠지게 일을 하고, 밤에는 밤대로 마루에 일거리를 산처럼 쌓아놓고 그 일을 하고, 비가 내리는 날에도 역시 집안에서 일을 했다. 농촌의 살림이라는 것이 게으름을 피우기로 하자면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지만, 부지런을 떨기로 하자면 여기저기 도처에서 일거리가 나뒹굴고 있기 마련이었다.

할머니는 돈이 되는 일과 돈이 안 되는 일을 구별하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가령 고추 말린 것을 그대로 내면 한 근에 만이천 원이지만, 꼬투리를 따내고 먼지를 닦아서 내면 그 곱절을 받는다. 고추뿐만 아니라 땅콩도 그렇고, 거의 모든 작물이 손을 많이 댄 것과 손이 덜 들어간 것의 가격 차이는 상당하기 마련이었다.

할머니는 과거에 당신 손으로 직접 하던 그 모든 일을 며느리에게 맡겼다. 두루뭉술하게 그냥 이것 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양을 지정해서 반드시 다 끝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고 당신은 남의 일 품팔이를 나갔다. 하루 일당 벌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까지도 며느리가 그 일을 다 못 끝내고 있으면 불호령이 쏟아졌다.

“할 일이 산처럼 쌓였는데도 먹을 것은 잘도 넘어가냐?”

사람이 먹는 것에 인색하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도 있다지만, 할머니에게 있어 먹는 것은 곧 돈이요, 돈은 함부로 먹어 치우면 안 되는 것일 뿐이었다. 딱히 며느리라서 먹는 게 아까운 것만도 아니었다. 손녀도, 손자도, 심지어는 아들이 삼시 세 끼 밥이 아닌 다른 것, 이를테면 까놓은 땅콩 같은 것을 먹고 있을라치면 대번에 빈정거림 가득한 지청구가 날아왔다.

 

▲ 석류

 

“그것도 다 돈이다. 돈을 그렇게 막 씹어 처먹으니 살맛이 나냐?”

돈, 그놈의 돈, 그 징글징글한 돈과 할머니의 인연은 역사가 깊었다. 서른다섯 나이에 남편이 죽었을 때, 죽은 남편을 흙에 묻고 나서 할머니가 맹세를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맹세를 오십 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맹세가 너무 이상하고 오싹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한스런 맹세를 한 것도 아니었다. 가진 것이라면 마을에서도 부자 축에 드는, 전답이 오십 마지기가 넘는 살림이었다. 오십 마지가 넘는 전답으로 삼남 이녀 자식들을 잘 키워서 시집 장가 다 보낼 때까지 단 한 마지기도 축내지 않겠노라는 맹세를 할머니는 그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단돈 일 원이라도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하겠다는 투로 일에 묻혀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자식들이 별 탈 없이 다 커서 시집 장가도 다 갔을 때, 오십 마지기가 넘는 전답은 할머니의 맹세 그대로 단 한 마지기도 줄지 않았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전답을 늘리는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생전에 열 마지기만 더 불리면 원도 한도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십 년이 채 안 돼서 목적한 열 마지기가 다 차고, 막내아들 내외가 집으로 들어오자 이번에는 과감하게 “스무 마지기만 더”하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나섰다.

그 바람에 연이네는 고추 꼬투리 따는 일에서부터 땅콩을 일일이 손으로 까는 일로 밤샘을 하기 일쑤였고, 일이 없는 겨울에는 갯마을에서 바지락이며 동죽 같은 조개를 가져다가 까서 납품하는 일로 또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그렇게 이십 년이 지나서 보니 정말로 스무 마지기의 전답이 불어났다. 할머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세가 무려 여든다섯에 이르렀건만, “나 살아생전 백 마지기만 채우면 원도 한도 없겠다”는 기절초풍할 만한 목표를 제시하며 며느리를 닦달질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으째 그렇게도 천치 바보 같을까?”

 

▲ 쓰러진 수수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연이네에게 반란을 도모하라고 꼬드겼지만, 연이네도 나름의 철학은 있었다.

“아유, 난 그냥, 시끄럽지 않게,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어. 죽어라고 일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죽은 듯이 잠을 잘 수 있거든.”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것, 잠이라도 마음 편하게 자고 싶다는 것, 연이네의 이러한 소망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취미 때문에 아내를 그동안 방치해 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남편은 어머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그렇게 그들은 집을 나갔고, 그 뒤로 한 달이 채 안 돼서 할머니는 쓰러졌다.

화장실 타일 바닥에 미끄러져서 머리가 깨지고, 발목이며 갈비뼈 등 여러 부위가 부러진 채로 꼼짝을 못하는 할머니를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지만, 혼자 살게 된 뒤로는 그 ‘꼬라지’가 궁금해서 기웃거리는 눈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참말로, 내가 여태까정 뭔 세상을 살았쓰까이, 응? 뭔 세상을.”

119 대원들이 와서 들것에 할머니를 실어나갈 때 할머니는 그 한 마디를 내놓고 기절해 버렸다. 할머니의 그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나간 자식들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당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후회하는 것?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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