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열일곱 번째 이야기 / 강진수

33.

에이미와 나, 형은 각자 무거운 배낭을 짊어 매고 아까의 여행사 앞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우리 셋 뿐 아니라 함께 우유니 투어를 할 두 명의 스위스 커플, 한 명의 아르헨티나 친구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부둥켜안고 짐을 지프차 트렁크에 하나씩 실었다. 그리고 우리가 2박 3일간 마실 물과 음식, 자동차에 넣을 기름 등을 지프의 루프에 올려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이로써 순식간에 우유니 투어를 위한 준비가 끝난 것이다. 그제야 운전기사와 투어를 함께할 친구를 포함한 우리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악수를 청했다. 여행사 직원은 운전기사를 가리키며 앞으로 우리의 2박 3일을 책임질 가이드라고 소개했다. 운전기사는 우리를 향해 꾸벅 인사하더니 외쳤다. Vamos, amigos! (갑시다, 친구들!)

 

 

그렇게 차에 올라타자마자 지프는 굉음을 내며 나아갔다. 조그마한 우유니 마을은 순식간에 차창 밖에서 사라졌다. 곧바로 우유니의 광활한 대지와 드높은 안데스 산맥이 드넓게 펼쳐졌다. 우리는 차 안에서 서로의 통성명을 했다. 스위스에서 온 두 커플의 이름은 로게르와 라리샤였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친구의 이름은 레오였다. 로게르, 라리샤, 레오, 에이미, 나와 형, 총 여섯 명으로 꾸려진 우유니 탐험대가 이렇게 완성되었다. 레오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온 레오는 영어를 몇 단어 정도로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씩 문장을 띄엄띄엄 말해주곤 했는데, 제스처를 섞어가며 어렵사리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어느 순간부터 우리 탐험대의 사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퀴즈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대신 영어를 아예 못하는 가이드와의 소통을 레오가 맡게 되었다.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레오가 대충 알아듣고 가이드에게 전달한 다음, 그 대답을 레오가 자신이 아는 단어들로 겨우 조합해서 전해주는 것이었다. 이토록 복잡한 메커니즘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신났다. 지프는 우리가 알던 세계와는 다른 풍경을 달리고 있고, 우리는 어쨌든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우유니 사막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인 기차 무덤이라는 곳이었다. 말 그래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기차가 죽은 듯 머물러 있고, 철로도 녹이 슬어 드넓은 사막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예전에 우유니 지역에는 광산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사용되었던 기차와 철길이라고 하는데, 점차 광산업이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그것들의 흔적이 박제되어 남았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대충 이런 줄만 알고 지프에서 내렸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는 그 값이 더 비싸다고 하니 어쩔 수 있겠는가. 지프 밖의 세상은 광활하며 눈부셨다. 태양과 구름이 적절히 하늘을 구성하고 있었고, 햇빛이 모래알에 반사되어 눈부신 광경을 연출하던 것이었다. 동시에 녹슨 기차 몸체 사이사이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장관이었다.

 

 

나와 형, 에이미는 신이 나서 기차로 달려갔다. 몸체를 붙잡고 올라가 사진을 찍고, 아슬아슬하게 포즈를 번갈아 잡았다. 힘겹게 사진을 찍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로게르와 라리샤가 먼저 다가왔다. 우리 사진을 찍어줄 테니, 자신들의 사진도 좀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 셋은 먼저 기차를 점령하여 과감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곧 내려와 스위스 커플의 달콤한 사진도 찍어주었다. 어색했던 우리 사이가 사진 하나로 금방 가까워졌다. 다섯이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하늘 모양이 어떠하니, 날씨가 좋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열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철로 위에서도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에이미가 요가를 한 경험이 있었으므로 우리에게 요가 동작 몇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아지랑이가 이는 철로 위에서 명상을 하고, 에이미와 어려운 요가 동작을 해보이기도 했다. 로게르, 라리샤, 레오도 우리 주변으로 모여 구경하면서 자신들도 따라 사진을 찍었다. 얼마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멀리서 가이드가 지프로 모이라고 우리를 부른다. 사진을 찍다가도 헐레벌떡 지프로 몰려가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34.

다음은 그 유명한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향했다. 사실 우유니를 온 이유는 소금 사막을 보러 온 것이 전부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가장 대표 명소로 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지프를 타고 가는 동안 조금 불안했던 것이, 먹구름이 조금 끼고 비가 옅게 흩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비가 오면 소금 사막을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마음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이드는 여유만만 기다려보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그의 말대로 날은 다시 개기 시작했고 해가 따뜻하게 사막을 감쌌다. 지프는 다시 격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지프가 멈춰선 곳에는 정말 하얀 소금 알갱이 뿐이었다. 소금 무더기 위로 올라가 우리 일행들은 가이드의 지휘 하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소금으로 지어진 소금 호텔 내부로 들어가 간단히 식사를 했다. 야채 위주의 식단이었지만, 맛이 무슨 상관인가.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젠 얼추 친한 척도 해가면서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나누고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이미 익숙해졌다는 듯 빠르게 지프에 올라타 착석을 했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서둘러서 오늘 하루 동안 볼 수 있는 것은 전부 즐겨야만 한다. 게다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는 우유니를 오늘 드디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마침 날씨도 우리를 돕고 있다.

지프가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우유니의 하늘과 땅은 천천히 그 경계를 잃고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감탄을 지르며 차창 밖으로 마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동영상도 찍으면서 우리는 무슨 짐승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가이드가 내리라고 한 곳에서 내리자, 발을 적시는 소금물에는 우리가 비춰졌고, 하늘에는 우리의 몸체가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정말 이때의 그 짜릿한 기분은 설명할 수가 없다. 오직 상상으로만 만들었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발바닥에 소금 알갱이들이 박혀 고통스럽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나도 모르게 소금물 한복판을 첨벙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람이 작아지게끔 보이는 착시효과로 유명한 이곳에서 우리는 대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아직 조금은 어색했던 우리 탐험대는 이곳에서 서로의 몸을 붙들고 춤도 추며 온갖 사진과 영상들을 찍느라 완전히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경이로운 풍경에 놀라면서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니, 에이미를 따라온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인연의 끈이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최선의 만남을 가졌다. 참 나는 행운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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