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강진수의 '요즘 시 읽기'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꿈꿔야 할 문장은
  잠언이 아닌, 모래바람을 향해 눈뜰 수 있는
  한 줄 선언이어야 할 것
  사막 쪽으로 비껴 부는 바람

  꿈으로도 꿈꾸던 달의 계곡 지나 이국의 마을
  바다에서 솟아오른 사막이 있다
  당신은 물을까, 왜 소금사막이어야 하는지

  만약 그리움이라는 지명이 있다면
  비 내린 소금사막에 비치는 구름 근처일 것이다
  끝없이 피어올라도
  다시 피어오를 만큼의 기억을 간직한 구름

  빗물 고인 소금사막에 떠 있는 기억의 신기루
  그 풍경을 손에 담으면 구름을 간직할 수 있을까
  간직을 꿈꾸게 하는 이름들
  구름과 당신이 같은 종족임을 말하지 않겠다

  소금사막에 밤이 오면
  별, 하늘을 찢고 나온 고통 한 점
  오래 쏟아지는 별빛에 살갗이 아플까
  당신은 이불깃을 끌어당기며 움츠리겠지
  다독이다 뒤척이다
  럼주를 구하러 마을을 기웃거리면
  문득, 골목 끝 비상약 파는 가게에서
  발효된 사탕수수 향을 맡게 되겠지
  운명은 종종 독주를 비상약으로 처방하고
  그 밤 우리의 감행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을까

  버리고 가자는 말보다
  다만, 두고 가자
  잠언에 시달리다 감행을 포기하는 당신이라면
  영원을 기다린 선언은 소금알갱이로 부서지겠지
  당신에게 소금사막은 여러 지명 중 하나

  저만치 비상약이 보이는
  밤의 창문을, 서성이다 가는 바람

  이은규, <소금사막에 뜨는 별>, 《다정한 호칭》

 

아무도 없는 여행지에서, 그 낯선 바람과 풍경 속에서 몸을 내맡겨본 적이 언제였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게끔 할 정도로 이 시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또렷하고 매력적이다. 누군가 시키지 않더라도 시인이 불러주는 대로 그림을 그려야만 할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매력적인 시를 보며 낭만주의라고 설명하지만, 그런 사족은 덧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해설을 곁에 두지 않아도 이은규 시인의 시는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물론 시인의 모든 시가 다 아름답기만 하고 낭만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굳이 이 시를 통해 이은규 시인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시인이 자신의 마음을 쓰는 방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감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고민과 번뇌, 그 너머에 있는 낭만과 탐미를 두고 왔다갔다 몸을 옮기는 시인에게 시란 과연 무엇일까.

이 시를 읽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여행을 다녀오던 나의 경험과 그곳의 분위기, 그리고 내 몸을 휘감던 바람과 모래로부터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시를 한 줄 한 줄 읽는데 몸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시인이 말하는 별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그 사막의 한복판에 서 있었으니까. 그 사막 위에서 선명하게 행렬하는 별의 무리들을 지켜보았으니까. 그러나 그 신비로움과 황홀경을 넘어서서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별의 아픔이다. 별을 품고 있는 하늘과 그 너머의 우주가 갖고 있는 아픔이다. 이 아픔은 시대적 사명이나 사회적 공감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그토록 사회적으로 읽히기에는 이은규의 시는 부드럽게 무언가를 감싸고 쓰다듬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것을 또 위로의 감성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저 형언할 수 없는 감촉이다. 그렇다. 감촉,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것으로 이은규의 시를 읽어야 한다.

 

▲ 우유니 소금 사막 (사진=강진수)

 

그리고 그 감촉이 반드시 건강하고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껴야만 한다. 언뜻 보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상상으로 가득한 세상일 것 같지만, 이은규가 그려내는 공간은 그보다는 익숙하고 우울한 면이 있다. 동화 속 장소 같은 소금사막에서 어떤 현실감을 부여하는 시간은 바로 밤이다. 밤이 오면서 시인의 시선은 하늘의 영역에서 땅의 영역으로 내려온다. 하늘은 공상과 몽상의 공간이지만, 땅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혹은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것이든 그것들의 삶이 있는 공간이다. 럼주와 비상약 파는 가게, 사탕수수 향은 이국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익숙한 느낌의 장소를 만들어낸다. 익숙하게 우리가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삶도 그곳에 담겨져 있는 듯 기분을 유도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과 약은 그런 우리의 현실과 삶이 마냥 행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늘의 공간에서 열려있던 아름다운 신기루는 이제 닫혀버리고, 땅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할 사람들의 삶은 병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약의 의미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프면 약을 먹고 그 병을 이겨내야 한다. 다행히 우리의 삶에는 비상약이 존재한다. 그것이 독주여서 우리의 기억을 망각시키든, 아니면 정말 제대로 된 비상약이든, 상관없다. 결국엔 어떤 경우든 완전히 우리의 병을 고칠 수는 없다. 비상약이라는 말 그대로, 그건 아주 잠깐 동안 땅 위의 고통을 감춰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이 그 병을 이겨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의지의 순간은 오직 상상에게 허락된 공간인 것만 같은 하늘을 땅의 현실로 끌고 내려온다. 낭만과 현실이 경계를 잃는 순간, 하늘의 영역에 존재하던 바람이 내려와 밤의 창문을 서성이다 가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은 영원이 되는 것이다. 짧지만 긴, 사라질 것 같지만 영원히 남는.

정말 소금사막을 다녀와 본 여행자로서 사족을 다시 덧붙이자면, 혹시 시인이 소금사막에 대해 시를 쓴 이유는 하늘과 땅의 경계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맞닿을 때 나는 영원을 꿈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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