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택견이야기-1회

한창 할로윈 치장으로 분주한 서울의 모습 속에도 인사동만큼은 그 흔한 호박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간판에는 오직 한글만이 쓰여있고, 한국인조차 잊고 살던 고유의 모습을 간직한 인사동은 ‘멋’이 있었다. 외국인 친구의 눈을 빌려 보니 인사동만큼 멋진 서울의 모습도 없더라. 이토록 고풍스러운 인사동은 택견 경기의 배경으로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학기에는 ‘택견’ 수업을 듣고 있다. 대학에서는 전공 수업 외에도 다양한 교양을 배울 수 있는데, 학교마다 다르지만 우리학교는 문학과 예술, 언어와 표현, 논리와 수리, 생명과 환경 등 여러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이 중 일부를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요건을 완성할 수 있다. 대부분 ‘필수 교양’은 1,2학년에 끝내놓는 편이나 학부 생활이 심심한 학생이라면 자율적으로 ‘선택교양’을 수강할 수도 있다. 필자는 2학년 무렵 우연히 건강 교양을 접했고, 검도와 재즈댄스를 수강했다. 여름방학을 빌려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수련을 떠나기도 하고, 겸사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체육 교과를 수강한 학기와 수강하지 않은 학기는 질적으로 완연히 달랐다. 기초체력과 육체적인 건강에서, 심지어 성적에 있어 조차 차이가 났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측면에서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진다고 느꼈는데,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을 배움이 좋았다. 건강한 자세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내면의 수양 못지않게 육체적인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차차 깨닫고 있었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이번 학기에 선택한 것은 택견이었다. 교수님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인사동에서 열리는 택견 경연을 보고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택견배틀’은 2004년부터 매년 개최되었다. 올해는 태풍도 꿋꿋이 이기며 인사동 문화마당에서 9월 15일부터 10월에 걸쳐 진행됐다. 마침 10월 27일 결승전이 있는 날은 말레이시아와 대만의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온 날이라 함께 택견을 보러 인사동에 갔다.

 

택견 경기를 알다

“이거 태권도야?”

함께 경기를 보러온 친구는 곧잘 이렇게 물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발음도 비슷하니 몇 번을 알려줘도 아리송할 터.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의 전통 무술로서 택견은 태권도에 비해 현저히 인지도가 떨어진다. 사교육 시장이 그 단상인데, 소싯적 태권도학원 안 다녀본 초등학생 찾기는 택견을 배워봤다는 초등학생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일각에서는 택견을 무예가 아닌 민속놀이의 하나로 치부하기도 하며 그 우스운 모양새가 볼품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택견협회 측은 여러 고대 문헌에 밝혀진 자료를 토대로 무술로서의 택견의 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다.

태권도와 미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대립과 상생의 역사를 보는 것도 은근한 재미를 준다. 일부는 택견이 태권도의 모체라는 말도 있고, 일부는 대한민국 정권 이후 정치적 배경에서 한국의 무술로서 태권도가 재생산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태권도에 비해 택견은 비교적 근래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다소 도외시되어온 면이 없지 않다. 1968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이 태권도를 문화재로 지정받으려는 과정에서 문화재 당국은 태권도가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정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택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유일한 조선시대 택견꾼 송덕기(1893~1987) 선생을 문화재보유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어 택견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사회적으로나, 문화사적, 국익의 관점으로도 오늘날 중요한 것은 택견과 태권도 모두 선조들이 남겨준 철학과 순리 연구에 힘쓰며,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더욱 발전시켜야 할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택견협회에는 대한택견연맹, 한국택견협회, 전국택견연합회, 결련택견협회 등이 있다. 필자가 소개하는 택견 배틀은 결련택견협회 주관으로, 결련택견협회는 앞서 언급한 초대 택견 인간문화재 故 송덕기 옹이 창립한 단체다. 택견의 계승 발전을 위해 교육, 경기,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결련택견은 여러 사람이 편을 짜서 “자기 마을의 명예를 걸고!” 택견으로 한바탕 겨루는 단체전 경기이다. 결련택견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성행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무예이자 상무적 민속놀이였다. 결련택견협회와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의 주최, 서울특별시와 종로구, 풍물패 예도통천, 이화 국악사의 후원으로 2004년부터 매년 열리는 택견 배틀은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이 결련택견판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택견 단체전 경기인 것이다. 각 팀은 다섯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출전은 3명의 선수가 하게 되며, 대전 상대와 대전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즉흥적인 구성이 보는 재미가 있다. 승리한 선수는 계속 경기를 진행하는 연승제이며, 3명의 패를 잃으면 경기는 종료된다. 한 명이 상대팀 출전선수를 다 제압할 수 있으므로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택견 배틀의 묘미이다.

 

 

경기 규칙은 단순하다.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상대 얼굴을 발로 한번 가격하면 승리한다. 이날 경기는 결승전답게 화려하며 유쾌했다. 중량급 선수들은 저만큼의 무거운 상대편 선수를 냅다 들어다 꽂아버리고, 경량급 선수들은 머리 위로 가볍고 빠르게 발기술을 선보였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간장을 졸이다가도 탄성과 환호로 열띤 신명을 풀어낼 때, 찰나의 순간으로 훅 들어오는 승자의 필살기를 눈으로 경험할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택견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갈고 닦아 온 맨손 겨루기 기예로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차거나 걸어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무예이다. 즉 택견의 기본은 발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택견의 발기술은 하늘을 나는 듯 춤을 추는 듯 화려하다. 태권도와 달리 택견은 싸움이 허리에서나와 찌르는 주먹이 아닌 여러 발기술로 구성될 수 있음을 새로이 보여준다. 택견은 유연하고 율동적인 춤과 같은 동작을 보여 준다. 그래서 택견 경기를 보면 긴장과 견제에 손에 땀을 쥐는 여타 무술 시합과는 다르다. 한 마디로 ‘신명난다‘고나 할까. 이것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철학과 닿아있다.
 

택견을 보다

“까라! 까!”

좀처럼 승패가 나지 않자 여기저기서 외침이 높아진다. 택견의 싸움은 단순히 경기자만의 것이 아니다. 함께 출전한 팀원과, 또 그들을 지켜보는 관중들 모두의 싸움이다. 택견은 이들 모두를 끊임없이 참여시킨다. 몇 가지 공유된 구호를 소개하자면 이와 같다. “까라! 까!”는 선수들이 공격을 하지 않고 눈싸움만 할 때 선수들을 격앙시키는 구호이다. 선수들이 서로 맞잡고 부둥켜 늘어져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때는 “물렀거라~!” 라고 외쳐준다. 또 긴장한 선수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공격이 어렵다 싶으면 “조여라~조여!” 라며 분위기를 전환하기도 한다. 선수들이 멋진 모습이나 기술을 보였을 때는 다함께 “지화자~!”로 하나가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이 가장 흥겨운 구호로 본다.

우리는 함께 감탄하여 박수갈채를 보내고, 때론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마주보며 ‘허허허허’ 웃었다. 중량급은 중량급답게 거구의 선수들이 출전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국민대학교 미르팀과 서울 종로택견패는 경기 전 유머와 투기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초반에는 국민대학교다 수세에 몰렸던 반면, 마지막 패로 출전한 이하람 선수가 상대편의 세 선수를 모두 내다 꽂아버리며 강력한 쾌감의 역전승을 선사했다. 경량급 결승전에서 수원결련택견패와 안암비각의 대결은 팽팽한 긴장으로 첫 판이 시간초과 무승부 판정이 나면서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순서로 출전한 이천희 선수는 노련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번개처럼 얼굴을 가격하는 발차기를 적중시키며 수원의 승리를 이끌었다.

 

 

인사동 문화마당은 탑골공원과 맞붙어 있어 정겹고 익숙한 “지화자~!”를 듣고 찾아온 어르신들이 군중을 이뤘다. 그런가 하면 인사동은 워낙 관광지 중의 관광지인데, 택견배틀 경기장이 꽤 외진 구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행을 온 외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젊은 선수들, 가족들, 탑골공원의 어르신들과 관광객으로 작은 경기장은 북적북적 했다. 오늘날 한국을 더욱 부상시키는 K-pop의 원동력은 사랑이다. 필자는 K-pop을 들을 때만큼이나 택견을 바라봄에 있어 세계 민족을 매혹시킬 만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 필자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멋스러운 전통문화이자 매력적인 무예를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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