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지음/ 문학동네

누구도 똑같지 않은 삶이라는 드라마를 가혹하지만 생생하게, 그러나 끝내 따뜻한 문장으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려내는 이은선의 신작 소설집 '유빙의 숲'이 출간되었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첫 소설집 '발치카 No. 9'을 출간한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소설집이다. 이은선은 등단작부터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신춘문예 심사평)는 평을 들으며 자신만의 단단한 소설세계를 구축해나갈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그리고 첫 소설집을 펴내며, 이미지를 압축해 제시하는 개성 있는 소설세계로 향하는 눈에 띄는 징검돌 하나를 내놓았다. 그리고 다시, ‘세월호’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한 이후 4년 동안 써낸 8편의 작품을 모아 두번째 소설집을 선보인다. 이은선은 개인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 질병의 유전, 친구나 가족의 범죄를 묵과했다는 자책감과 거기서 기인한 도피생활 등에 처한 다양한 인물들의 고통을 그 극한까지 몰아붙인 뒤, 잔혹한 현실을 어떻게든 통과해 살아낸 그들이야말로 삶에 대한 가장 지극한 애정을 가진 존재들임을 역설해 보인다.

소설집을 여는 작품인 '유리 주의'에서부터 다양한 과거와 사정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중국의 어느 휴양지로 패키지여행을 온 일행은 괴생명체가 산다는 호수나 “유리창의 일부나 다름없”이 유리창에 매달려 유리를 닦는 청소부들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따로 여행을 왔다가 눈이 맞아 오로지 육체관계에만 몰두하는 커플, 오래전 계획한 환갑 기념 여행을 와서도 자신들의 속사정에 따라 행동하는 여고 동창 삼인방,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는 신혼부부, 불륜관계이면서도 부부를 연기하는 커플 등은 모두 각자의 욕구나 잇속을 챙기기에 바쁘다. 소설은 한 호텔에 묵는 이들의 동상이몽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패키지여행의 일원이 된 듯한 생생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 없는 것은 투명한 유리창을 없는 것으로 착각해 끊임없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는 새들을 보고도, 혹은 눈앞에서 유리창을 닦는 청소부들을 보고도 자신들의 행각을 투명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닫는 이들의 모습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혼결혼식’이라는 희귀한 소재를 다룬 '뼈바늘' 역시 이야기가 주는 무게감과는 다르게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다. 이른 나이에 비명횡사한 남녀의 영혼을 맺어주기 위한 혼례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리는데, 비현실적인 요소가 개입됨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참담한 현실과 직접 맞닿아 있다. 혼례를 치러선 안 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도 돈봉투를 챙기는 일에만 급급한 주지 스님의 모습은 차치하더라도, 남녀의 생전 악연이 밝혀지는 충격적인 장면조차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기에 선연하고 섬뜩하게 다가온다.

소설집을 닫는 작품인 '커피 다비드'는 작은 섬에 자리한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풀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리 주의'와 그 궤를 같이하지만 소설의 결은 사뭇 다르다. '유리 주의'가 두루뭉술한 윤리 감각이나 이타심 상실 같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면, '커피 다비드'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애정을 가져볼 만한 것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짚어낸다. 바다에서 남편을 잃고도 바다를 떠나지 않거나, 말기 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복역중인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거나,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친구를 끝내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마음 같은 것들이 활기찬 남도의 사투리로, 톡톡 튀는 ‘고딩이’의 언어 등으로 현장감 있게 그려진다.

이은선은 소설의 인물들을 참혹한 현실에 그대로 노출시키지만, 결코 그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진 않는다. 끊임없이 현실을 뛰어넘어 살아갈 동력을 추동하게 만들고, 끝내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지나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만든다. 설령 이미 세상에 없는 존재일지라도 ‘숨’이라는, ‘기포’라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불러내 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한 지극한 애정, 떠나는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며 카페 안의 등을 모두 켜고 촛불까지 켜두는 마음('커피 다비드')이 이은선이 소설과 삶을 대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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