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신간>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8.11.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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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거워스 지음/ 최파일 옮김/ 김영사

전후 패전국 전역에 감돈 분열과 대립의 양상은 이제껏 어떤 책도 상세히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이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다. 혁명과 반혁명이 거듭되고, 해체된 패전 제국의 폐허에서 생성 중인 국가들이 내전과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면서, 1918년 대전의 공식적 종식과 1923년 7월 터키 국경선을 확정한 로잔 조약 사이 전후 유럽은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저자는 17세기 30년전쟁 이래로 유럽 대륙이 이 시기보다 더 치명적이고 뒤죽박죽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폭력의 지속은 그리스-터키 전쟁처럼 국가 간 영토 전쟁의 형태를 띨 때도 있었고, 러시아,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독일 일부 지역처럼 사회 혁명, 즉 내전의 형태를 띠기도 했으며, 발트 3국 등의 경우처럼 민족 혁명, 즉 독립 전쟁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어떤 형태를 띠었든, 공산주의자부터 민족주의자, 농민에서 노동자, 좌파부터 우파까지,다양한 계층과 정파가 충돌한 무력시위에는 어김없이 잔혹한 보복과 테러가 뒤따랐다. 그러나 경제적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전후 동유럽과 중유럽에 세워진 민주 정부는 사회 소요를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극단적인 정당은 안정과 질서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표심을 확보해나갔다.

저자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목표가 바뀌었다. 더 이상 특정 영토를 획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급의 적’이나 ‘민족의 적’과 같은 ‘이질적인 분자’를 일소한 동질적 민족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이 전쟁 목표가 된 것이다. 한 헝가리의 민병대장은 “나는 뒤틀린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에 취한 이 광신적 인간 짐승들한테 50대의 매질을 추가로 지시했다”고 회상했는데, 그에게 비인간화되고(‘인간 짐승’) 비민족화된(‘볼셰비키’) 적은 아무런 가책 없이 고문하고 죽여도 되는 존재였다. 이제 적은 비인간화된, 살려둘 가치가 없는 범죄자가 되었다. 극단적 폭력을 통해 내부의 적을 발본색원하는 것은 패전의 폐허에서 국가를 다시 수립하기 위해 정당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내부 폭력’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등 전복 세력이 후방전선에서 ‘배신’했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패전국의 군부와 보수 세력의 믿음을 부채질했다. 이 배반의 서사는 음모론으로 발전해 독일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었고, 이는 전간기 독일 우익의 신념의 주춧돌이 되었다. 특히 히틀러와 무솔리니 정권의 내부 분열에 대한 강박은 전체주의, 인종주의와 결합해 체계적인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낳았다. 제2차 세계대전뿐 아니라 유고내전에서 또한 그러한 ‘종족 청소’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으니,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의 유산은 건재하다.

이 책은 또 한 번의 파괴적인 세계대전과 냉전, 피비린내 나는 민족 분쟁이 100년 전 유럽의 파국적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을 규명한 심층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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